
9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증거 위조 의혹 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은 위조 의혹 문서 입수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 4∼5명의 명단을 확보한 상태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증거 위조 의혹에 어디까지 개입했으며 궁극적으로 보고의 ‘윗선’은 누구인지 가려낼 방침이다. 무죄 판결을 받은 간첩 사건을 뒤집기 위해 국가 주권이 달린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과연 국정원 수뇌부 지시나 인가 없이 독자적으로 이뤄졌는지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진척 상황에 따라서는 검찰의 수사대상에 남 원장이 포함될 수도 있다. 지난해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 때도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 조사를 마친 뒤 국정원 수장이었던 원세훈 전 원장만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종명 당시 국정원 차장 등 간부들과 심리전단 직원들은 원 전 원장 지시에 따른 것에 불과해 ‘행위 지배력’이 없다는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따라서 남 원장이 증거 조작과 관련된 ‘명시적’ 지시를 하지 않았더라도 유우성씨 사건과 관련된 보고를 받은 정황이 나온다면 남 원장 소환조사나 사법처리로 이어질 전망이다.
만약 검찰이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을 압수수색한다면 2005년 ‘안기부 X파일’ 수사와 지난해 ‘국정원 대선·정치개입 활동’에 이어 역대 3번째 강제 수사가 된다. 이는 황교안 법무장관과의 ‘악연’을 이어가는 것이다. 황 장관은 앞서 ‘안기부 X파일’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로 사건을 지휘했고, ‘국정원 대선·정치개입 활동’ 수사 땐 법무·검찰을 총괄하는 수장이었다. 다만 검찰은 강제 수사에 돌입하더라도 국정원에 자료 요청 형식으로 수사 협조를 구하는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국정원은 이날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께 사과한다”며 “수사 결과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위조 증거 제출 검찰 책임 없나
검찰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속내는 따로 있다. 사실 간첩 사건에서 국정원이 문서 위조 의심을 받는 것과 별도로 이번 사건 기소를 맡은 검찰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증거 위조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검찰은 국정원이 제공한 자료의 진위를 검토하지 않은 채 재판부에 거짓 증거를 제출한 꼴이 돼 책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수사와 공소 유지에 참여한 검사들을 국정원 직원들과 공범 관계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달 26일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위조 의혹 문서 입수에 관여한 국정원 소속 이인철 선양 영사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검사 2명도 함께 고발 대상에 넣었다.
이런 상황에 놓인 검찰로서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책임론’의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국정원을 상대로 고강도 ‘물타기 수사’를 해야 할 동기가 충분한 셈이다. 검찰은 그러나 “국정원이 입수한 문서를 진정한 것으로 보고 재판부에 냈다”며 “증거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면 (그때는) 공소유지를 못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다른 증거 조작 있나
국정원 협력자 김모(61) 씨가 지난 7년 동안 중국 공문서를 국정원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다른 대공 사건에서도 김씨가 건넨 문서를 증거로 활용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증거 조작 의혹에 휩싸일 전망이다.
김씨는 2∼3년 전까지 중국 지린성 연길시의 한 고등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해 왔다. 국정원 대공수사팀 요원은 검찰에서 “김씨의 신분이 교사였기 때문에 김씨가 구해온 문서들을 믿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국정원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김씨와 같은 휴민트(HUMINT·인적정보)의 노출로 향후 국정원의 대공수사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국정원이 협조자의 신원을 보장하지 않은 전례를 남긴 만큼 국정원의 정보 활동에 선뜻 협조할 민간인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증거 조작의 진위를 떠나 국정원은 협조자의 신원을 보호해야 했는데 잘못된 선택을 했다. 향후 국정원이 고급 정보원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조성호 기자 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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