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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는 불법 ‘현금깡’… 뇌물·리베이트 ‘검은 돈의 유혹’

입력 : 2014-01-27 19:56:28 수정 : 2014-03-29 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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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상품권 시장] (중) 상품권 시장은 비자금 통로인가
설을 닷새 앞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일대. 롯데·신세계 백화점 인근에서 성업 중인 상품권 환전소에는 평소보다 많은 이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누구보다도 현금이 절실해진 사람들이다. 오후 2시쯤 A상품권 판매소에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주위를 의식하며 들어오더니 쇼핑백에서 상품권을 뭉치로 꺼냈다. ‘상품권 깡’을 하러 온 것이다. 주인이 두 뭉치 중 한 뭉치를 현금계산기에 넣자 모니터에는 30이 찍혔고, 또 다른 뭉치는 50이 찍혔다. 모두 800만원이다. 일정 수수료를 떼고 5만원권으로 현금을 받은 남성은 유유히 사라졌다.


환전소 관계자는 “상품권을 뭉치로 가져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들의 거래액은 수백만∼수천만원에 이른다”며 “간혹 억대가 거래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의지를 비웃듯 설을 앞두고 ‘상품권 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깡’으로 마련된 현금이 리베이트나 뇌물 등 불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문제다.

◆뿌리치기 힘든 ‘은밀한 유혹’

지난 15일 법원은 업무추진비 법인카드로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해 현금화한 혐의로 박광태 전 광주시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박 전 시장은 재임시절인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업무추진비 카드로 145회에 걸쳐 20억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토록 한 후 ‘깡’을 통해 현금화해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도 대전지역 사립대학 전 경리팀장이 ‘상품권 깡’을 통해 학교 돈 5억4000만원을 빼돌렸다 구속됐다. 무려 51장의 법인카드가 ‘상품권 깡’에 동원돼 주위를 놀라게 했을 정도다. 법인카드를 이용한 ‘깡’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서울 명동에서 상품권 환전소를 운영하는 B씨의 말은 더 충격적이다. 그는 “일부 중소기업 사장들은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한 뒤 되팔아 현금을 챙긴다”며 “보통 거래액이 수백만∼수천만원이다. 회사는 어려워도 사장들은 현금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큰 기업에서도 ‘깡’을 통해 수억원씩 현금을 마련한다”며 “사전에 현금을 마련해 놓으라고 연락이 온다”고 털어놨다. ‘상품권 깡’을 통해 기업들이 비자금을 마련한다는 항간의 떠도는 말이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제약회사 리베이트 단속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상품권 깡’인데, 이를 통해 비자금을 마련하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면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고 경고했다.

27일 서울 중구의 한 상품권 교환소에서 상품권이 거래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상품권 깡’ 근절 대책은 없나


‘상품권 깡’이 활개를 치고 있는 데는 허술한 법망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백화점에서 법인카드로 구입한 상품권을 상품권 환전소에서 5∼6% 할인된 가격에 팔아 현금을 마련한다. 은밀한 거래 과정에서 신분확인 절차도 무시된다.

상품권을 현금화할 수 있는 환전소의 경우 세무서에 신고를 하고 정식으로 영업하는 업소도 일부 있지만 소규모 업소들은 대부분 ‘무허가’다. 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유가증권 할인을 통해 기업들이 현금화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들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돼야 한다”면서 “탈세를 일삼는 무허가 환전소에 대해서도 주무부처가 관련 규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상품권 깡을 근절하는 방법은 카드로 상품권 구입을 막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러다 보니 기업 정기 세무조사에서나 자금 추적이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오래되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기환 유통전문기자 k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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