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1000m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금메달리스트 모태범(25·대한항공)이 1000m 우승자 샤니 데이비스(32·미국)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모태범은 500m에서는 라이벌 가토 조지(29·일본)를 꺾고 올림픽 2연패를 넘본다. 데이비스는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흑인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을 차지했다. 모태범은 밴쿠버 대회에서 한국 빙속 사상 첫 단거리 금메달을 안겼다. 오랫동안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빙속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스타들이 소치에서 맞붙는 셈이다.

모태범과 데이비스는 2월 12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소치 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밴쿠버 대회 1000m에서 1분9초12로 1분8초94를 기록한 데이비스에게 금메달을 넘겨준 모태범은 이번 소치 대회를 설욕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최근 모태범도 “소치 올림픽에서는 500m보다 1000m에 집중할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만만치 않다. 단거리에서 특히 강점을 보이는 모태범은 초반 스퍼트가 장점으로 꼽히는 반면 후반 레이스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데이비스는 전형적인 중거리 선수이기 때문이다.
모태범은 강점을 더욱 강화하는 전략으로 맞설 참이다. 강력한 초반 스퍼트를 앞세워 기선을 잡겠다는 것이다. 모태범은 “조금이라도 우승 가능성을 높이려면 경쟁자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첫 200m 구간을 빠르게 통과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여세를 몰아 한 바퀴를 더 돌아 600m 지점까지 빠르게 통과한 뒤 마지막 1바퀴(400m)에서는 1위를 지킨다는 게 자신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데이비스는 1000m와 1500m에서 8차례나 세계기록을 갈아치웠고, 현재도 신기록을 보유해 명실상부한 이 부문 최강자다. 데이비스는 올 시즌 열린 4차례 월드컵에서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가 선정한 ‘소치 동계올림픽을 빛낼 10인’에도 포함된 그는 1000m에서 전인미답의 3연패를 노린다. 데이비스의 장점은 코너링과 뒷심. 흑인 특유의 탄력과 두꺼운 허벅지 근육으로 경기 후반 폭발력을 발휘한다.
미국 야후스포츠는 모태범과 키엘트 누이스(24·네덜란드)를 데이비스의 경쟁자로 꼽으면서도 데이비스의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최근 월드컵 대회에서 모태범이 데이비스를 꺾은 만큼 우열을 속단할 수는 없다. 지난해 12월 8일 독일에서 치른 월드컵 4차 대회 1000m에서 모태범은 1∼3차 대회를 제패했던 데이비스를 3위(1분9초59)로 밀어내고 1분9초50으로 우승했다. 모태범은 초반 200m에서 데이비스보다 0.8초, 600m에서 1.18초 앞섰다. 후반에 데이비스가 스퍼트를 올렸지만 결승선 통과는 모태범이 0.09초 더 빨랐다.
◆쫓기는 입장에서 쫓는 입장으로, 500m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강력한 500m 우승 후보였던 가토 조지는 당시 ‘유망주’ 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모태범에게 밀려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제 모태범은 수성을, 가토 조지는 첫 우승을 노린다. 4년 전과는 입장이 달라졌다.
500m 스프린터 대결은 박빙의 승부가 될 전망이다. 제반 조건만 놓고 보면 모태범이 앞선다. 조지는 29세로 전성기를 구가하는 모태범보다 나이가 많다. 체격도 상대적으로 왜소하다. 하지만 조지는 스타트에서 발군의 능력을 자랑한다. 1000m에서 모태범이 데이비스에게 초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 양상이다.
지난해 12월9일 월드컵 4차 대회 500m에서 맞붙은 모태범과 조지의 메달 색깔은 1000분의 2초 차이로 갈렸다. 이 대회에서 모태범은 34초876, 조지는 34초878을 기록했다. 모태범이 후반 강력한 스퍼트로 이겼지만 100m 지점까지는 조지(9초61)가 모태범(9초66)보다 0.05초 빨랐다. 조지는 9초5에 100m 지점을 통과한 적도 있어 100m까지는 견줄 상대가 없다.
따라서 소치에서 펼쳐질 모태범과 조지의 500m 대결은 1000m와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조지가 초반 100m에서 벌려놓은 격차를 지구력으로 유지하느냐, 모태범이 나머지 400m에서 에너지를 폭발시키느냐에 따라 최강 스프린터가 결정될 전망이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