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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불행에 무너지는 가정… 고난을 이길 힘은 역시 사랑 뿐

입력 : 2014-01-23 22:56:39 수정 : 2014-01-23 22: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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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산다는 것은 이처럼 힘든 일이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저녁 한 끼 함께 먹기 어려울 만큼.

‘만찬’은 양극화 시대, 서민층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쳐지는 세상, 경제적 가치에만 휘둘려 ‘평균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는 박탈감에 빠진 우리 시대 서민들의 심리적 상태를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을 통해 심도 있게 보여 준다.

1959년 발표된 이범선의 ‘오발탄’은 당시 서민들이 겪고 있던 혼란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걸작이다. 실향의식과 생활고를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월남 후 계리사 서기로 일하는 송철호의 집에는 치매를 앓는 노모와 만삭의 아내, 영양실조에 걸린 딸,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동생, 양공주가 된 여동생이 산다.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듯 저마다 사회문제를 대변하고 있는 식구들은 마치 오발탄처럼 잘못 발사되어 목적지를 잃고 1959년의 한국사회를 떠돈다.

그리고 2014년, 세월은 흘렀지만 서민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먹고살 길은 막막하고,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며,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는 삶이란 어디에도 없다. 청년실업, 명예퇴직, 가계부채, 소득격차, 노후빈곤 등의 단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 새삼 미안하고 무안한 일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2남1녀를 키운 노부부. 넉넉한 자금을 축적하지 못해 은퇴 이후 늘 쪼들린 생활을 한다.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큰아들 인철(정의갑)은 어느날 갑작스레 명예퇴직을 당하고 대리운전에 나선다. 인철의 아내 혜정은 몸이 병약한 탓에 불임으로 마음고생이 심하다. 딸 경진(이은주)은 ‘나쁜 남자’를 잘못 만나 자폐증을 가진 아들 재현을 혼자 키우며 이혼녀로 살아간다. 막내아들 인호(전광진)는 화물운송과 대리운전을 하며 돈을 모으지만 아직도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 여념이 없는데, 동거 중인 애인으로부터 예정에도 없던 임신소식을 듣는다.

고기 한 점 못 넣은 미역국을 상에 올린 엄마의 생일. 여느 때와 다르게 자식들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 걸려온 전화라고는 급히 돈 구할 데가 없느냐고 묻는 막내 인호의 것뿐이다. 늙은 남편은 아내를 측은하게 여겨 나가서 햄버거를 잔뜩 사온다.

“나도 햄버거를 다 먹어보게 되네.”

빠듯하게 사느라 노년의 생일을 맞아서야 생애 처음 햄버거 맛을 본 엄마는 작은 즐거움을 베어물지만, 저마다 엄마를 떠올리며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가슴이 아리다.

절망은 너무나 쉽게 담을 넘어 스멀스멀 다가온다. 인호는 대리운전을 하다가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인철은 당황한 인호를 안심시키며 시체를 유기한다. 온 세상을 덮을 듯이 흰 눈이 맹렬히 쏟아지는 가운데 또하나의 불행이 외출 중인 인철의 가족을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남을 듯싶다.

행복은 붙잡을 새도 없이 떠나가고 불행은 예기치 않은 손님처럼 불쑥 찾아온다. 평범한 가족의 일상과 그들에게 닥친 불행을 카메라는 담담한 관찰자적 시선으로 따라간다. 영화에 딱 한 번 등장하는 가족들의 만찬 장면은 가족의 소중함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인상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혼과 경제기반의 붕괴로 가족의 구성력이 사라져 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담아내면서도, ‘재현’이라는 소통 불가능의 상징적 인물을 배치해 사랑만이 우리의 존재 가치를 뚜렷하게 하고 어떤 고난에도 사랑을 지켜 나가는 자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펼쳐 보인다.

김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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