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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 새 소망을 품다

입력 : 2014-01-09 20:49:32 수정 : 2014-01-10 15: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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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금강산’ 암봉 위 제비집 같은 도솔암 …
미황사 부도는 조형예술품…
우리 땅 끝이자 시작점에서 새 기운 얻어 …
전남 해남에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 ‘땅끝’이 있다. 해남은 그래서 그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기며 한 해의 끝에 ‘12월의 여행지’로 많이 다뤄져 왔다. 그 내용도 사뭇 엄숙하고 비장한 게 많았다.

그러나 끝은 곧 시작을 의미한다. 우리 땅은 그곳에서 끝나지만, 또 그곳에서 시작된다. 국토순례의 시발지도 해남 땅끝이다. 땅끝 마을에 있는 여러 표지석도 하나같이 ‘끝이 곧 시작’임을 일깨우고 있다. 땅끝마을 초입의 돌기둥에는 ‘아, 땅의 시작. 희망의 땅끝’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땅끝마을 안내판의 제목도 ‘희망의 시작’이다.

그래서 해남은 한 해의 시작인 1월의 여행지로도 맞춤한 곳이다. 땅끝마을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세밑에도 많은 사람이 찾지만, 연초에도 그 못지않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우리 국토의 시작점에서 새 희망을 찾고, 새 출발을 위한 기운을 얻는 것이다.

‘땅끝’이 있어 해남은 우리 땅 굴지의 여행지가 됐지만, 또 한편으로 해남에는 ‘땅끝’의 명성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절경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중 대표적인 명소라면 달마산(492m) 도솔암을 꼽아야 할 것이다.

해남 달마산 암봉 꼭대기에 제비집처럼 앉아 있는 도솔암은 해남의 여러 명소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특별한 곳에 자리한 만큼 범상치 않는 기운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 믿고 이즈음 이곳을 찾아 기도를 드리며 새해 소원을 비는 사람도 많다.
달마산은 땅끝마을이 있는 해남군 송지면의 동남쪽 경계를 따라 솟아 있다. 이 산 정상 능선의 암봉 위에 자리한 도솔암에 오르면 멀리 땅끝이 내려다보이니, 이곳에서 본격적인 땅끝 여행이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다. 달마산 정상 능선에는 기기묘묘한 형상의 암봉이 솟아 있는데, 그 기세나 모양새가 금강산이나 설악산의 그것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붙은 별칭도 ‘남도의 금강산’이다.

도솔암은 달마산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도솔봉의 암봉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마봉마을을 지나 통신탑 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9부 능선까지 올라간다. 여기서부터 정상 능선을 따라 도솔암까지는 700m. 공룡의 등뼈같이 울퉁불퉁 솟아 있는 암봉들이 한참 동안 이어지더니 암봉 사이 손바닥만 한 터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작은 암자를 만난다. 어찌 저토록 아슬아슬하게 천길 낭떠러지 위에 암자를 올렸을까. 해남 사람들 표현대로라면 바로 ‘땅끝서 만나는 하늘끝’에 다락방 같은 암자가 매달려 있는 셈이다. 우리 땅 전체를 봐도 이처럼 짜릿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은 흔치 않다.

좁은 돌계단을 밟아 서너 명만 들어도 꽉 차는 도솔암 마당에 올랐다. 도솔암 뒤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고, 정면인 서남쪽으로 멀리 땅끝마을과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오른쪽으로는 진도, 왼쪽은 완도다. 도솔암의 연원을 따지면 통일신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의상대사가 세운 도솔암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패퇴한 왜군이 해상 퇴로가 막히자 달마산으로 퇴각하면서 불을 질러 폐사됐다. 그렇게 수백년이 흘렀고 현 주지인 법조 스님과 불자들이 2002년 흙기와와 자재를 져 날라 불과 32일 만에 법당을 지었다.

해남읍에서 도솔암으로 향하다 보면 먼저 미황사를 거치게 된다. 미황사 입구에서 도솔암까지는 차길로 13㎞쯤 된다. 미황사와 도솔암은 도보길로도 연결돼 있다. 해남의 명소를 두루 엮은 ‘천년숲 옛길’의 일부다. ‘천년숲 옛길’의 전체 길이는 52㎞인데, 미황사에서 산길을 걸어 도솔암을 거쳐 땅끝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17㎞쯤 된다.

미황산 대웅전 뒤에 서 있는 불꽃 형상의 달마산 암봉.
미황사는 볼거리가 많은 절이다. 절집 입구 부도는 조형예술품을 방불케 한다. 연꽃, 게, 거북이 등 부도벽에 새겨진 문양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또 대웅전 돌받침에는 특이하게도 게와 거북이상이 조각돼 있다. 우리나라 절집에 게가 새겨져 있는 곳은 미황사밖에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인도에서 경전과 부처상을 실은 배 한 척이 달마산 포구에 닿아 미황사를 세웠다는 창건설화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찬찬히 살펴야 눈에 들어오지만, 절집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 가득 차는 게 있다. 바로 대웅전 뒤에 버티고 서 있는 달마산 정상의 암봉이다. 단청이 다 지워져 말간 얼굴을 하고 있는 대웅전과 대비돼 암봉은 더 선명해 보인다. 대웅전 뒤로 불꽃처럼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달마산 정상 암봉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미황사는 이 암봉이 있어 풍경이 완성된다. 저토록 날카롭고 가파른 암봉 사이에 도솔암을 올렸다는 데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된다. 도솔암에 올라 땅끝과 남해를 가슴에 품어보고, 미황사에서 올려다보며 다시 암봉을 눈에 담으면 새해 새 출발을 위한 기운이 온 몸에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해남=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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