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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뜻 이어주는 영물… 진취적 기상·역동성 상징

입력 : 2013-12-31 19:55:06 수정 : 2013-12-31 19: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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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적 관점에서 본 馬 “양산 기슭의 나정 곁에 번갯불 같은 이상한 기운이 드리워 있는데, 거기에 흰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서 살펴보니 자줏빛 알 한 개가 놓여 있었다. 말이 사람을 보자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다시 千古(천고)의 뒤에/ 白馬(백마) 타고 오는 超人(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앞 글은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신라 시조 혁거세의 탄생 설화다. 뒤의 것은 저항시인 이육사가 지은 ‘광야’의 일부다. 두 창작물의 시간적 간격은 수백년이다. 하지만 위대한 인물의 등장이 말을 매개로 상상되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우리 민족이 말에 투사하는 상징에서 비롯된 것이다.

2014년 갑오년을 상징하는 말은 신성(神聖)과 상서로운 징조, 하늘과의 연결 등으로 해석됐다. 말띠의 성격과 운명은 실리적이고 불의에 저항하는 남성성이 강하지만, 공상에 치우친 게으름으로 패가망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석됐다.

# 하늘과 이어지다

혁거세 설화에서 보듯 고대로부터 말은 하늘의 사신 혹은 중요한 인물의 탄생을 알리는 영물이었다. 부여의 금와왕, 고구려의 주몽 등 국가 시조의 탄생에는 어김없이 말이 등장한다.

삼국사기에서도 말은 모두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신성성과 관련될 때 백마로 묘사되는 경우가 특히 많다. 밝음, 광명 혹은 태양을 상징하는 흰색과 결합된 것이다. 태양은 남성의 원리다. 여기서 천마사상을 읽을 수 있다.

내년을 상징하는 청마(靑馬)는 특별한 뜻을 가질까. 전통 사회에서 색깔과 인간의 길흉화복을 결부했다는 기록은 없어 청마에 별도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고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관장은 “황금돼지해 등으로 색깔에 인간의 운명을 결부하는 것은 상업적 계산과 결부된 최근의 경향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령스러운 동물로 간주된 말꿈은 용꿈 못지않은 길몽으로 생각했다. 말이 달리는 꿈을 꾸고 얻은 자식은 장차 큰 인물이 된다고 믿었다. 전통 사회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높은 벼슬에 있었기 때문이다.

말은 또 무덤의 수호신이었다. 옛날 무덤의 벽화에는 종종 말이 등장한다. 부장품으로도 애용됐다. 신라 천마총은 워낙에 유명하다.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영매자인 셈이다. 조선시대 국장에서도 말이 등장하는데 고대의 것과 같은 역할과 의미를 가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마을을 수호하다

오늘날까지도 말은 일부 지역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신앙의 대상이다. 모형이나 그림으로 표현돼 마을 지키는 신이 타고 다니는 동물로 추앙됐다. 충남 안면도의 정당리, 강원도 대관령 등지에서 이런 신앙 형태가 보고됐다.

호랑이와 관련된 재앙을 막는다고도 믿었다. 경남 고성의 석마리에는 호환(虎患)이 자주 일어났는데, 스님이 일러준 대로 마을에 석마를 모신 이후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남성의 생식력과 연관지어 득남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기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전통 혼례에서 신랑이 백마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 것에서 이런 인식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새 희망 향해 달리자 31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국마사회 제주경주마육성목장 초지를 예비 경주마들이 갈기를 휘날리며 내달리고 있다. 2014년 새해는 저 말들처럼 우리 모두가 희망찬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한다.
제주=이제원 기자
#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


태어난 해의 띠로 운명과 성격을 점치는 것은 대표적인 풍속이다. 말띠와 관련된 대표적인 속설이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주팔자까지 따져가며 왕비를 맞은 조선에서 성종비 정현왕우, 인조비 인렬왕후 등 다수의 말띠 왕비가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속설이 오래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띠 여성은 기질이 세다고 했던 일본의 믿음이 일제강점기에 퍼진 게 아니냐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말띠의 성격과 운명은 대체로 어떻게 해석될까. 말이 인간의 보조자로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잘 다루는 사람은 운에 활기를 띤다고 믿었다. 주인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실질을 숭상하는 기질을 가졌다고도 보았다. 하지만 공상, 환상에 경도돼 불운을 자초한다는 단점이 있다.

# 오늘도 달린다

천마사상, 마을 수호신 등을 운운하는 걸 보고 말에 대한 관심이 전통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국 사회에서 최고급의 차종인 ‘에쿠스’는 말의 학명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없어지거나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포니, 갤로퍼도 말과 연관된다. 페라리는 앞발을 든 말이 상징이다. 오랜 세월 인간의 가장 충실한 교통수단이었던 말의 기능이 자동차의 이름에 반영된 것이다.

천마관광, 은마관광 등의 이름을 단 버스는 고속도로에서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남성화장품은 말의 이미지를 종종 빌려왔다. 우람한 근육, 갈기를 휘날리는 역동성 등은 남성성을 표현하는 데 딱이었다. 말표 고무신이나 운동화는 서민들의 발을 보호해준 대표적인 신발 브랜드였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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