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마’는 튼튼하고 잘 달리는 최상급의 말을 의미한다. 오랜 시간 방치됐던 이 갑마장이 지난해 봄 ‘갑마장길’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도보길로 다시 태어났다. 갑마장길은 드넓은 초원과 삼나무길, 작은 기생화산인 오름과 오름 사이를 걸으며 조선시대 목축문화의 흔적을 좇는 근사한 트레킹 코스다.
가시리는 한라산 고산지대와 해안지대를 연결하는 중산간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90∼570m사이에 고르고 평탄한 지형이 넓게 펼쳐져 말들이 뛰고 훈련하기에는 최적이다. 갑마장이 있던 곳은 지금 가시리마을의 공동목장이 됐다.
‘갑마장길’은 갑마장과 그 주변 가시리 마을을 에두르는 길이다. 보통 가시리문화센터에 출발하는데, 전체 길이가 약 20㎞쯤 된다. 한 바퀴 도는 데는 7시간 정도 걸린다. 갑마장 위주로 절반 정도인 10㎞만 걷는 ‘쫄븐 갑마장길’도 마련돼 있다. ‘쫄븐’은 ‘짧은’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 제주도 체류 시간이 길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쫄븐 갑마장길’을 걷는다.
갑마장길 트레킹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건 바로 오름이다. 가시리에 있는 13개의 오름 중 8개의 오름을 갑마장길이 지닌다. 이 중 ‘제주 오름의 여왕’이라고 별칭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따라비오름(342m)은 ‘쫄븐 갑마장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쫄븐 갑마장길’은 조랑말체험공원에서 시작된다. 공원 초입의 ‘행기머체’가 눈길을 끈다. 반구형의 커다란 용암덩어리로, 제주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여주는 흔적이다. ‘머체’는 ‘돌무더기’를 뜻하고, 행기는 물을 담는 놋그릇이니, 머체 위에 행기물을 놓았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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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븐 갑마장길의 출발점에 서 있는 말조형물. |
능선에 놓인 돌탑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왜 따라비 오름을 ‘제주 오름의 여왕’이라고 부르는지 단번에 수긍이 간다. 따라비오름은 원형으로 된 큰 분화구가 마치 새끼를 품고 있듯 작은 분화구 3개를 품고 있다. 이 분화구 3개의 능선이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을 그려낸다. 이 능선을 따라 걸으며 주변을 조망하는 게 따라비오름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정상에서 내려보다는 전망도 빼어나다. 너른 초원지대와 그 위에 조성된 풍력발전단지, 그리고 사방에 봉긋하게 솟은 오름, 그 뒤편의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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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따라비오름은 갑마장길 트레킹에서 절정의 구간이다. 따라비오름은 원형의 큰 분화구가 작은 분화구 3개를 품고 있다. |
잣성 옆에는 삼나무를 심었다. 쭉쭉 뻗은 삼나무와 어우러진 잣성이 너른 평원을 굽이친다. 높은 곳에서 제주 땅을 내려다보면 이 돌담의 행렬은 용솟음치는 듯하다. 그래서 ‘흑룡만리(黑龍萬里)’라고 불렀다. 예전에 사슴이 살았다는 큰사슴이오름 정상에 오르면 갑마장의 전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갑마장과 잣성에서 뛰어놀던 조선시대 수많은 준마들의 말발굽 소리, 함성 소리가 지금도 한라산 자락에 가득차 있는 듯하다.
제주=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여행정보(지역번호:064)=제주공항에서 곧바로 갈 경우 대천동사거리에서 녹산로를 따라 ‘조랑말 체험공원’(787-0960)으로 간다. 조랑말체험공원은 제주의 목축문화를 보여주는 유물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3층 옥상정원에서는 360도 전체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조랑말 타기·먹이주기 체험도 가능하다. 몽골텐트로 만든 게스트하우스와 캠핑장도 마련돼 있다. 가시리 마을은 돼지고기와 순댓국이 맛있기로 제주도에서 유명하다. 가시리 순댓국은 뭍의 것과는 맛과 형태가 다른데, 국물이 걸쭉하고 고소한 게 특징이다. 마을에 10여곳의 식당이 있다. 그중 ‘가시식당’(787-1035)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가스름식당’(787-1163)도 비슷한 음식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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