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고향이라 불리는 인도의 인사말은 ‘나마스테’이다. ‘당신의 내면에 있는 신성(神性)에 경배한다’는 뜻이다. 인사의 대상은 상대방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의 영혼이기도 하다. 인사할 때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공손하게 예를 갖춘다. 가슴 앞에 합장하는 자세를 ‘아트만잘리 무드라(atmanjali mudra)’ 즉 아트만(atman)에게 인사하는 자세라 칭한다. 동양에서 가슴은 정서의 중심이다. 이곳에 아트만, 즉 ‘참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참나를 자각하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있음은 순간순간을 의식하는 것이다. 깨어있음이 이어지면 깨달음이다. 인사가 곧 명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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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민 대전대 외래교수·뷰티건강관리학 |
한때 대학교 학생회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필자의 지인 이야기다. 1990년대 소위 운동권 대학의 철학과 출신이니 존재와 세상에 대한 고민이 상당했을 터. 그런데 15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안녕하지는 못하단다. 이유인즉 과거를 답습하는 세태처럼 변치 못한 자신이 답답하기 때문이란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은 정체된 자신에게서 시련을 본다’라며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스스로에서 찾는다. 서양철학을 전공한 그는 요가와 명상으로 나를 다스린다. 물론 수련의 시작과 끝에 나마스테를 염송(念誦)한다.
세태에 대한 단순 비판은 쉽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은 쉽지 않다. 대자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한 모 학생이 박수 받는 까닭이다. 다만 객관적 자기성찰에서 전체를 보는 안목이 생긴다. 자기생각을 버리는 게 먼저다. 그래야 상대방이 보인다. 깨어있는 지성인이란 순간순간 내면을 바라보는 자를 말한다. 바라보는 과정에 바로 보인다. 스스로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시대를 읽는 눈도 탁월하다.
진실 된 인사는 ‘너와 나’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참나는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안녕하지 못할 때 인도의 인사법을 실천해보자. 방법은 간단하다. 의식을 ‘지금 여기에’ 두고 참나를 향해 인사하자.
“당신에게 사랑을 다해 예배드립니다.” 나마스테!
류현민 대전대 외래교수·뷰티건강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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