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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밍고는 왜 머리를 뒤집은채 먹이를 먹을까

입력 : 2013-12-06 19:50:34 수정 : 2013-12-06 19: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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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습속 따라 생존차원 진화”
적자 생존, 다윈 진화론 반박
샴쌍둥이 이야기 등 재밌는 과학에세이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김명주 옮김/현암사/2만8000원
플라밍고의 미소/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김명주 옮김/현암사/2만8000원


다윈의 진화론은 틀렸다? 다윈 이후 최고의 생물학자로 평가받는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의 과학 에세이가 국내에 출간됐다.

신간 ‘플라밍고의 미소’는 다윈이 주창한 ‘적자생존’의 진화론은 틀렸으며, 삶의 환경과 습관 등 ‘우연’에 의해 생명체는 진보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생명의 역사에서 우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굴드의 이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속평형설’이다. 진화는 개체 발전보다는 환경과 생태변화에 따라 우연히 일어나며, 모든 생명체는 의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다윈주의에 젖어 있는 현대 과학계는 굴드 이론에 심하게 반발했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아울러 그는 “생명사의 패턴은 어느 정도 무작위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이론은 일종의 무신론적 배경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다윈의 진화론에 반기를 든 생물학자로 생전에 명성을 날렸다.

굴드는 1974년부터 2001년까지 27년 동안 미국 자연사박물관이 펴내는 월간지 ‘내처럴히스토리’에 300여 편의 에세이를 연재했다. 이 잡지는 세계 과학계에서 명망있는 과학 작가의 등용문으로 인정받는다. 이 책의 원서는 1985년 출간됐으며 대개 1980년대 초반에 쓰인 글이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에 쓰인 과학 에세이지만 굴드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도서출판 현암사는 그의 과학 에세이를 추가로 묶어 2014년 봄에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란 제목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학의 일종인 플라밍고는 머리를 거꾸로 뒤집어 먹이를 먹는다. 왜 그럴까. 굴드 이론에 따르면 플라밍고는 부리를 일부러 거꾸로 뒤집어 먹이를 먹는 게 아니다. 환경과 습속에 따른 생존의 차원이지 적자생존의 결과는 아니라고 굴드는 말한다. 이는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의 유전’에 가깝다. 용불용설이라고도 하는데 우연히 조성된 환경과 생태 습관에 따른 진화라는 주장이다. 굴드는 다윈의 이론과 맞지 않는 생태 현상이 너무 많다고 주장한다. 교미 후 배우자를 잡아먹는 암컷 사마귀, 성전환하는 꽃과 달팽이 등 이야기는 재미와 정보를 함께 준다. 샴쌍둥이를 한 사람으로 봐야 할지, 두 사람으로 봐야 할지 분석한 에세이도 독특하다.

플라밍고는 먹이를 먹을 때 머리를 뒤집는 독특한 버릇이 있다. 굴드는 이를 통해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의 문제점을 짚어낸다.
유쾌한 스포츠 과학도 더러 있다. 책에 실린 14번째 에세이 ‘프로야구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을까’는 야구를 과학으로 풀이했다. 흥미로운 추론 과정을 거쳐 “야구는 과학이 되었다”는 말로 4할 타자의 소멸 이유를 요약한다. 다시 말해 구원 투수 도입이나 야간 경기 등 타자에게 불리한 환경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경기 자체의 정확성·규칙성·표준화에 의해 4할 타자가 사라졌다는 것.

“더블플레이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실행된다. 모든 투구와 타격은 기록되고, 상세한 기록집에는 각 타자의 습관과 약점까지 적힌다. 야구는 우아하고 정확한 게임이 되었고, 그 결과 초창기의 극단적 성적이 사라졌다.” 굴드는 4할 타자의 소멸 이유로 ‘양극단의 소멸’을 제기한다. 야구는 과학이기에 과학을 따라잡을 타자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스티븐 데이 굴드.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는 굴드의 인생에서 특별한 시기에 쓰여졌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에세이집 ‘닭의 이빨과 말의 발가락’을 출간한 직후인 1982년 그는 복부에 생기는 암 선고를 받았다. 평균 생존 기간이 8개월밖에 안 되는 희귀암이었다. 하지만 굴드는 에세이에 고통스러운 투병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암 선고 이후 평상시와 다름없는 왕성한 글쓰기를 계속했다. “신이여,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100번을 다시 태어나도 그 풍요를 다 알 수 없겠지만, 그저 그 안의 아름다운 조약돌을 몇 개라도 더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는 죽음을 삼킨 승리의 삶을 살았고 그 결실이 이 책으로 나왔다. 굴드는 이후 20년이나 지난 2002년 다른 종류의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발자취는 후세 과학인들에게 큰 감명을 준다. 그는 1967년 하버드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2002년 사망할 때까지 하버드대 지질학 및 동물학 교수로 있었다. 굴드는 평생 ‘과학의 대중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으며, 명예박사학위만 44개이니 그의 과학적 업적은 다윈 이후 최고였다고 평가받는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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