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전제 위에
한반도 위기관리 매뉴얼 다시 짜야 ‘맨얼굴의 중국’을 쓴 백양은 1984년 크게 한탄했다. “과거의 영광은 그저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은 정신차리지 못하면 머잖아 지옥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서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무기력하던 중국은 어디 간 건가. 30년 사이 중국엔 덩샤오핑이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그가 있었기에 발톱을 숨긴 채 개혁 개방의 시기를 헤쳐올 수 있었다. 중국이 숨죽이며 살아온 것은 오직 중국의 꿈 때문이다.
중국은 청나라 때 제3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18세기 중엽 정복 전쟁 결과 팽창된 영토가 1300만㎢에 이르렀다. 지금도 광활한데 현재보다 인도 정도의 크기(328만㎢)를 더 포함하고 있었다. 국가주석 시진핑은 취임 이후 수시로 “핵심 이익엔 양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것으로 이 말을 실천했다. 과거사로 데면데면한 일본은 그렇다 치자. 박근혜정부 이후 전례없이 우호적인 우리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중국은 동중국해에 이어 남중국해, 서해로 레이더 반경을 넓힐 것이다. 중국 담장은 그만큼 넓어진다. 육지에서 영토 확장은 어렵지만 해양과 하늘은 무궁무진하다고 본 것이다. 중국의 꿈은 바로 이것이다. 해양대국이 돼 제4 황금기를 펼치는 것이다.
중국의 제3 황금기에 주변국은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몽골, 신장 등은 망국한 뒤 병합됐다. 조선은 인조가 망국 대신 굴욕을 택해 청의 가장 오래된 피보호국으로 남았다. 무려 258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강했다. 진, 한, 수, 당, 원, 청이 그랬다. 중국이 제4의 황금기를 위해 꿈을 펼치는 그 경계선에 한국이 있다. 아픈 역사를 잊으면 굴욕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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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 논설위원 |
중국은 타조처럼 소화력이 막강하다. 중국의 중화주의가 선봉에 서 있다. 중화주의는 이웃나라의 돌과 모래까지 다 먹어치울 기세다. 일본은 군국주의 깃발로 동북아의 거대한 고래가 되려고 한다. 일본은 자존심을 접고 세계 최강 미국 옆에 납작 엎드려 있다. 일본의 정치적 리더십을 코웃음 칠 일이 아니다. 일본이 19세기 격동의 시절 미국의 함포외교에 순응하고 동북아 패자가 된 사실을 낮춰봐선 안 된다.
한국 국력은 커졌지만 중· 일은 더 막강해졌다. 국토는 분단돼 있고 북한은 중·일보다 더 미운 짓을 하곤 한다. 외생 변수가 많아졌으니 더 어려운 국면이다. 위기관리가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위기관리에서 리더십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지도자의 혜안은 국민을 각성시키고 위기에 강한 통합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위기관리 대응 시스템을 정교하게 다시 짜야 한다.
외교부 장관은 어디 있는가. 외교전쟁의 최일선에 있어야 할 외교장관이 테이프커팅 행사에나 다니고 있으니 한심하다. 미국 조 바이든 부통령이 일·중·한 연쇄 방문에서 보여준 것은 현상유지였다. 하지만 어쩌랴. ‘첩 정은 삼 년, 본처 정은 백 년’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첩에 혹한 사람이라도 잠시 한눈파는 것이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은 결국 본처인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피로 맺어진 운명공동체이다. 동북아 긴장이 높아진 만큼 한·미는 동맹의 가치를 다시 되새겨 봐야 한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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