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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 47년 만에 부산 명물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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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공사 마치고 개통 6·25전쟁 등 한국 근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부산 영도다리가 47년 만에 도개(跳開) 기능을 회복해 27일 오후 재탄생했다. ‘복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옛 영도다리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전국 유일의 일엽식(한쪽만 들어올려지는 ) 교량으로 거듭났다.

영도다리는 일제강점기인 1928년 섬인 영도를 연결하기 위해 착공해 6년 공사를 거쳐 1934년 11월 23일 준공했다. 당시 영도다리는 총연장 214.6m, 폭 18.3m, 높이 7.2m, 왕복 4차로 규모였다. 이 중 도개교가 길이 31.3m, 너비 18m였다. 도개교 부분은 최고 80도까지 들어 올려졌고 저속으로 올릴 때 4분, 고속으로 올리면 1분30초 만에 완전히 들어올려졌다. 도개교란 돛이나 굴뚝이 높은 큰 배가 다리에 걸리지 않고 그 밑으로 운항할 수 있도록 상판을 들어주는 기능을 가진 교량을 말한다.

27일 부산 중구의 영도대교의 상판이 47년 만에 다시 올려지자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이를 휴대전화 등으로 찍으며 새로운 명소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 아래의 작은 사진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영도다리 모습.
부산=남제현 기자
당시 기록에 따르면 5만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 영도다리 개통식은 준공식과 도교식, 축하행사 등으로 진행됐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초도식에서는 신관이 앞서고 소학교와 보통학교에서 선발된 우량 아동 124명이 가장 먼저 다리를 건넜다. 일제는 대륙 침략을 위한 보급과 수송로 구축을 위해 영도다리를 만들었는데, 영도에 조선소 같은 대규모 중공업시설을 짓고 그곳에서 생산된 군수물자를 옮기는 데 영도다리를 활용했다. 이 교량을 건설하는 데 한국인 노동자 수십만명이 동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25전쟁 때 영도다리는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이 전쟁 와중에 헤어진 이들을 만나려고 다리 밑을 찾으면서 ‘우리나라 만남의 광장 1호’ 역할을 했다. 영도다리는 하루 두 번씩 다리를 들어올렸고, 교통량이 급격히 늘면서 1966년 9월 1일 도개 기능을 멈췄다.

1980년대 영도대교로 명칭이 변경된 영도다리는 2003년 재난위험 등급 판정을 받아 철거 논란을 빚다가 2009년 ‘교량 해체 후 복원’ 결정이 내려지면서 2010년 롯데그룹이 공사비 1100억원을 부담해 복원공사가 진행됐다.

새 영도대교는 길이 214.8m, 폭 25.3m, 왕복 6차로 규모로 첫 개통 당시보다 2개 차로가 늘었다. 도개 부분은 1000t급 배가 다리 밑을 지날 수 있도록 2분여 만에 75도 각도로 세워진다. 부산시는 앞으로 매일 한 차례, 정오부터 15분간 영도다리를 들어올릴 예정이다.

공사비는 도개교 부분에만 200억원이 들었고, 옛 도개교 부분은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해체돼 따로 보관 중이다.

이날 개통식에는 허남식 부산시장 등 10만여 명이 운집했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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