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새해 예산안을 제때 처리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예산안에 앞서 끝냈어야 할 지난해 결산은 정쟁으로 얼룩지면서 올해도 ‘졸속·늑장’의 구태를 재연하고 있다. 헌정 사상 첫 준예산 편성 우려까지 나오는 터라 이번 결산은 역대 최악으로 평가된다. 이미 법정 처리시한(8월31일)을 훌쩍 넘기면서 시간에 쫓겨 겉핥기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라 살림에 대한 결산 소홀은 고스란히 예산안 부실심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과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여야 대치가 격렬해지면서 결산은 처음부터 뒷전으로 밀렸다.
이명박(MB)정부 막바지 부실한 예산 집행 문제를 국회에서 집요하게 따져야 하지만 아예 ‘금배지’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인 기관도 적잖은 것으로 파악됐다.
MB정부 4대강 사업이 이슈가 되면서 결산 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국회 환경노동위와 국토교통위가 역설적으로 가장 심각했다.
환노위 담당 총 32개 기관이 상임위 결산심사 회의에 출석했는데 84%인 27개 기관은 단 한 건의 질문도 받지 않았다. 국토위 소속 23개 기관 중 78%인 18개 기관도 마찬가지였다. 여성가족위는 75%, 교육문화체육관광위는 54%의 기관이 자리만 지키다 조용히 퇴장했다.
상임위 결산 예비심사 회의에 출석하는 기관 자체도 줄었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에서 대상기관은 626개로 지난해(557개)보다 크게 늘었지만 122곳만 출석해 작년(211개)보다 되레 감소했다.
국감 대상기관 중 결산심사 불참기관도 504개로 지난해 346개보다 껑충 뛰었다. 지난해 정부의 예산 집행률은 95.3%로 최근 5년간 가장 낮았다는 점에서 결산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여야가 정쟁에 팔려 대충 넘긴 꼴이다.

정부나 국회나 새로 집행할 예산에 신경 쓰다 보니 이미 써버린 결산 심사는 해마다 찬밥 신세다. 결산처리 법정시한을 넘긴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03년 사전결산심사제 도입 후 법정시한을 지킨 것은 2011년 한 차례뿐이었다. 실제로 올해 결산심사 전체회의 시간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146개 참석 기관의 평균 심사 소요시간은 64분에 불과했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1시간 만에 1년간 수천∼수조원의 혈세를 굴린 기관의 씀씀이가 심사된 셈이다.
특히 환노위는 32개 기관에 대한 결산 예비심사 시간이 겨우 14시간9분에 불과해 최악 수준이었다.
이처럼 부실한 결산은 결국 정부의 낙관적인 경제성장률에 근거한 부실 예산 수립의 빌미를 제공한다. 정부는 2011년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제성장률 전망치 4.5%를 기반으로 2012년도 예산을 수립했다. 그 결과는 올해 4월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지적이 따른다.
이천종·홍주형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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