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등 거액 투입 연구개발 얼마 전 국내 유수의 대기업을 주축으로 한 ‘퀀텀정보통신연구조합’ 출범식이 있었다. ‘퀀텀정보통신연구조합’은 양자기술(퀀텀 테크놀로지)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위한 기술 과제를 협동해 해결하고 신산업을 발굴해 관련 산업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선진국에 비해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도 몇몇 과학자에 의해 양자정보통신 연구가 시작된 지 15년 만에 정부와 기업이 이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발생한다. 가령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사람이나 사물이 두 군데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자 속의 전자는 동시에 두 개의 원자 A와 B가 존재할 수 있다. 이때 어느 한 원자에서 전자를 실제로 관측할 수 있는지는 확률로 주어진다.
이처럼 놀라운 양자역학의 특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양자기술은 기존의 정보기술(IT)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마술과 같은 놀라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즉 양자역학은 내가 보낸 양자신호를 누군가가 해킹하려는 순간 그 신호가 훼손됐다는 사실을 통신 당사자에게 알려준다. 이에 기초한 양자암호기술은 도청과 해킹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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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열 서울시립대 석좌교수·양자전자공학 |
올해 노벨화학상이 양자화학을 이용한 시뮬레이션 방법론(전산 모사)에 수여된 것을 봐도 분자구조의 양자역학적 특성을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다소 먼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양자기술은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물질의 전송도 가능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원자 1개를 직접 전송하는 실험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바 있다.
최근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 세계 다른 나라의 주요 인사 및 기관을 도·감청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스노든 사건’의 파문이 전 세계에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정작 도·감청의 주역인 미국이 2008년 도·감청 방지를 위한 양자정보통신기술을 연방정부의 미래 비전으로 선정해 매년 1조원 이상 연구개발(R&D)에 투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국의 뒤를 이어 일본, 중국, 싱가포르가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양자정보통신기술에 쏟아붓고 있다.
보안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전문가인 제임스 뱀퍼드는 그의 저서 ‘미 국가안보국 NSA’에서 “미 국가안보국은 외국기관의 컴퓨터를 해킹하기 위해 양자컴퓨터 개발에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며, 외국기관으로부터의 도·감청을 방지하기 위해 양자암호통신에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고 했다.
세계는 지금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한경쟁에 돌입해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손무(孫武)가 손자병법에서 말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할 수 있다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란 경구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이 양자정보통신기술 개발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정보통신 분야에 관한 한 아직도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마치 100여년 전 신흥 강대국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끼여 있던 조선의 모습과 어딘지 흡사해 보인다. 미래는 양자정보통신기술을 확보한 나라와 확보하지 못한 나라로 명암이 극명하게 갈릴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에서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석좌교수·양자전자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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