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문하자 마침 친척들 집안 모임… “하늘이 도와” “제게 기적이 일어났어요.”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재일교포 3세 프리랜서 작가 모리 아야(50)는 지난 5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을 겪었다. ‘100년 만의 친척 만남’을 가진 것이다. 그녀의 할아버지 조귀석씨는 일제강점기에 동생 귀룡씨와 함께 일자리를 구하러 일본에 건너갔다. 귀룡씨는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귀석씨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단 한차례도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모리는 BIFF의 한 파티에서 만난 영화제작가 안동규 ㈜두타연 대표에게 자신의 집안 내력을 들려주었는데 이것이 ‘만남’의 단초가 되었다. 안 대표는 영화계 안팎에서 선행 베풀기로 유명하다. 흥행부진을 우려해 남들이 잘 달려들지 않는 기록영화에 제작비를 대는가 하면 형편이 어려운 독립영화를 위해 종종 상영관 전석 관람권을 구입, 주변에 선물하기도 한다. 그가 이번에도 나섰다.
4일 늦은 밤 사연을 들은 안 대표는 곧장 5일 오전 4시30분 부산을 떠나 모리의 고향 전남 장흥으로 향했다. ‘모리의 혈연찾기 여행’에는 일본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하기니와 게이타도 동행했다. 그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두루 카메라에 담았고 이병헌, 황신혜 등 국내 배우도 촬영했다. 작가 모리와 팀을 이뤄 올해 BIFF를 기획취재하고자 부산에 왔다. 모리가 가져온 주소지는 고속도로 옆 고추밭으로 변해 있었다. 500m쯤 떨어진 마을에 갔지만 토요일이었던 탓에 주민센터도 문을 닫았다. 다행히 밭일을 나가는 일흔 남짓 노인 한 분을 만나 이곳에 온 이유를 들려주니 그가 92살 된 자신의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묻는다. 놀랍게도 귀룡씨와 친구였다는 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귀룡씨의 바로 위 누나가 낳은 딸이 지금도 마을에 살고 있다는 반가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걸음에 집을 찾아가 보니 모두 산소에 가고 없었다. 하늘이 돕는 걸까. 때마침 이날은 1년에 한번씩 집안 어르신들이 모여 귀룡씨 묘소를 찾는 날이었다.
모리는 할아버지가 도일한 지 100년 만에 세상을 뜬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친척 어른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보았다. 하루 안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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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의 만남’을 이룬 재일교포 3세 작가 모리 아야(가운데)가 친척 어른의 품에 안겨 혈육의 정을 나누고 있다. 모리는 할아버지가 도일한 지 100년 만에, 세상을 뜬 할아버지의 고향 전남 장흥을 방문해 기적처럼 친척 어른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연출했다. 하기니와 게이타 제공 |
부산=김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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