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부재’ 치명적 현실 직시해야 최근 발매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20대와 30대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저 하루키 열풍이라는 문학계의 시선이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하루키가 ‘1Q84’ 이후 거의 3년 만에 내 놓은 소설인지라 필자도 사전 예약을 해 읽어 보았다.
그런데 국내 서점의 베스트셀러 1위부터 10위까지를 보면 대부분 자기계발서가 주류를 이룬다.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경우는 하루키의 신작 정도나 돼야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와 일본이 대비되는 또 다른 예는 추리소설과 SF(공상과학)소설에 대한 일본 문학계의 평가와 두터운 독자층이다.
추리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의 작품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인공지능을 갖게 된 전투기를 주제로 한 SF소설 ‘유키카제’를 쓴 간바야시 조헤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문학계는 장르물이 고갈돼 있다. 추리물과 SF소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을 그저 우리 작가들의 역량 부족으로만 봐야 할 것인가. 오히려 우리에겐 상상력 부재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예컨대 과연 우리나라 독자에게 외계인의 존재가 받아들여질까. 한마디로 너무 먼 얘기이다.
하지만 하얀 소복을 입은 전설의 고향 처녀귀신은 그 어떤 상상력과 부연설명 없이도 받아들여진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언제 어디서나 검색을 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런 만큼 상상을 해 볼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여기엔 입시 위주의 교육도 한몫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로 혹은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는 상상력은 발휘될 수 없다. 더욱이 추리소설이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를 모두 폄하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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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열 서울시립대 석좌교수·양자전자공학 |
그것이 순수문학이든 SF소설이든, 소설만이 갖는 좋은 점은 상상과 꿈의 세계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특히 SF소설은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을 통해 열어주며 과학을 대중에게 가깝게 해 줄 수 있고 미래의 과학자가 되려는 청소년에게 꿈을 갖게 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상상력은 비단 문학에서뿐만 아니라 물리학을 포함한 자연과학에도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빛과 함께 움직이는 관찰자를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생화학자인 왓슨과 크릭이 DNA(유전자)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유전암호를 전달하는 분자모형을 상상해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루키의 작품을 ‘단순한 열풍’이라고 말하기 전에 대중에게 특히 미래의 과학을 주도할 젊은 층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광풍을 일으킬 만큼 재미있고 진정성 있는 작품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석좌교수·양자전자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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