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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 유전공학, 인류개조와 의란성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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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6-12 22:03:53 수정 : 2013-06-12 22: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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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형질 개선 잘못된 편견 제공
‘디자이너 베이비’ 탄생 가능성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에는 악역으로 20세기 말 유전공학으로 창조된 ‘칸 누니언 싱’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유전자 조작에 의해 월등한 지능과 체력, 그리고 웬만한 부상쯤은 스스로 치유되는 초인적인 능력의 소유자인 칸은 동일한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그의 부하를 이끌고 21세기의 지구 정복을 시도하나 결국 인간과 벌인 전쟁에서 패배하고 72명의 동료와 극저온 캡슐에 갇힌 채 우주선 ‘보타니 베이’에 실려 추방당하는 운명이 되고 만다.

이러한 초인에 대한 동경은 어쩌면 유사 이래 인류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지성과 긍지, 그리고 넘치는 생명력으로 위대함을 갈망하는 초인의 모습을 제시했다.

니체의 초인사상은 19세기 말 다윈의 사촌인 골턴에 의해 창시된 우생학과 결합해 20세기 초 중반 미국과 유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유전자(DNA)가 유전정보 전달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밝혀 프랜시스 크릭과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제임스 왓슨 박사는 그의 저서 ‘DNA를 향한 열정’에서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나치독일이 1930년대 정신이상자 등 40만명을 우생학적 원리에 의해 살해한 뒤 더 나아가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동기의 하나로 히틀러가 니체의 초인 사상뿐 아니라 우생학의 철저한 신봉자였음을 들었다. 우생학의 철학이 유전적으로 유리한 개체를 보존하는 것뿐 아니라 열성 유전자를 가진 약자를 제거함으로써 사회와 인간의 진화를 추구한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우생학의 잘못된 가치관은 20세기 초 미국에서조차 정신질환자 등 수십만 명에게 불임 수술을 강요하는 결과를 자초했다. 이는 열등 형질에서 각종 사회적인 불평등이 비롯된다는 논리를 우생학이 제공하고 있으며, 유전자 조작 또는 외과적 수술에 의해 이러한 열등 형질을 제거하거나 개선한다면 개인이나 특정 사회적 집단이 비교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의 실마리가 되는 것 같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나치 독일에서 우생학과 유대인을 분별하는 방법에 관한 연구를 주도해 아우슈비치의 대학살과 깊이 연관된 과학자가 전후 독일의 주요 대학과 학계에서 인류 유전학의 주도적 인물로 남아 있다는 현실이라고 왓슨은 지적했다. 그중에는 심지어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에 관한 기작으로 노벨상을 받은 생물학자도 포함돼 있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소개된 ‘의란성 쌍둥이’(의사에 의해 만들어진 판박이 얼굴)라는 용어 역시 외모가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한다는 대중의 맹신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는 면에서 우생학의 편견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실제로 서울 강남에 가면 지나가는 젊은 여성의 상당수가 비슷한 코와 눈으로 특정 지어지는 얼굴을 하고 있다. 성형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아마 미래의 어느 시점에선 ‘진아 101’, ‘진아 203’ 등으로 사람을 불러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일본 도쿄에 갈 일이 있었다. 강남에 해당하는 롯폰기에 가봤는데 성형을 한 젊은 여성은 거의 보이지 않아 비교가 됐다.

휴먼 게놈 프로젝트의 결과로 이제 우리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또 현실적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열성 유전자를 수정하는 방법도 갖고 있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우성형질로만 구성된 디자이너 베이비를 탄생시키는 것도 가능해질 것으로 많은 과학자는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헉슬리의 ‘위대한 신세계’가 현실로 한걸음 더 다가온다는 생각에 역사는 또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석좌교수·양자전자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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