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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화가 김현정의 그림토크] 대가들의 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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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시대 초월 영원한 생명력으로 감동 줘 연기 수업을 받다 보면 명배우 명연기의 한 장면을 그대로 따라 할 때가 있다. 극중 상황을 똑같이 설정하고 캐릭터에 맞게 연기를 하다 보면 관객으로 볼 때와는 사뭇 다른 즐거움이 느껴진다. 한 장면의 표정과 동작을 배우로서 교감하는 것이다.

존경하는 명배우의 명장면은 수백 번을 따라 해도 매번 새롭다. 짧은 순간의 연기도 외줄을 타듯 온몸에 긴장감이 넘치고 무척 길게 느껴진다. 더디게만 느껴졌던 한걸음 한걸음이 나를 새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모두를 사로잡았던 명품 연기는 연습과정에서 후배 배우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표현되기도 한다. 

김현정의 ‘봄의 기억’(비단에 채색).
그림도 연기와 같다. 나는 17세기 중국의 명나라 말기 천재화가 진홍수(陳洪綬)를 좋아한다. 그는 송나라 그림을 배웠으나 전혀 새롭게 ‘둥근 것은 모나게 바꾸고, 정제된 것은 풀어 헤치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에 없었던 그만의 독특한 그림 세계는 그의 추종자들 또한 대화가로 만들었다. 나 역시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의 그림을 리메이크해봤다.

한 달 동안 그림의 필선을 따라 그리면서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궁리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비단에 십여 차례 색을 입혔다. 피었다 어느새 지는 하얀 목련, 아름답지만 과실에 묻혀 알려지지 않은 사과 꽃, 깔깔하면서 담백한 태호석(太湖石), 고전미가 흠뻑 넘치는 호랑나비 등은 평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이다. 이 밖에도 귀여운 목련 봉우리 비늘잎에는 금분을 써 햇빛에 반짝거리는 모습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청나라 초기 화가인 운수평의 그림과 글이 생각났다. 운수평은 비슷하기보다는 사물의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정교하게 그림으로 담아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붓과 먹(물감)은 본디 무정(無情)하지만, 붓과 먹을 쓰는 사람은 무정해서는 안 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정(情)을 붙잡는 데 있으니,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이 생기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진홍수의 그림을 배웠지만 그와 다르게 투명한 부분은 더 투명하게, 두터운 부분은 더 두텁게 그렸다. 운수평의 생각을 빌려, 감상하는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봄의 극적인 아름다움을 한 폭의 비단 위에 표현하였다. 이러한 리메이크 과정은 나에게 물감으로 온전히 표현하지 못할 때 자수를 화법으로 도입하여 이를 보충하는 ‘화주수보(畵主繡補) 화법’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명품 연기나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이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무심히 봤던 영화나 그림이 나에게 꿈을 심어 주었다. 대가가 남긴 위대한 예술세계는 시대나 국적을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력으로 우리와 함께 있다. 몇백 년이 흘렀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감동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들이 보여준 새로운 예술은 지금도 유효하다.

www.kimhyunjungtal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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