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명 이채로운 하모니 아름다운 카파도키아에서 떠나올 때는 그동안 친해진 이들과의 헤어짐 속에 모든 아쉬움을 뒤로해야만 했다. 이스탄불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카파도키아의 아름다움과 괴레메의 친구들을 회상하며 잠이 들었다. 밤차이기 때문에 아침이면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대부분 숙소들이 방이 없어 빈방을 찾아 돌아다니길 5시간째가 되어갈 때쯤 겨우 찾아냈다. 비까지 오는 바람에 여정이 더 힘들었다. 고이 모셔 놨던 우의를 입는다. 그동안 비 구경을 제대로 못했던 나에게 비는 반가운 손님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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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 고등어 반 마리를 빵에 끼워 먹는 고등어 케밥. |
고등어 케밥이라고 하는 건 긴 핫도그 빵을 잘라 소시지 대신 고등어 반 마리를 넣어주는 것이다. 세로로 반을 잘라 구운 고등어와 빵이 어울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왜 생선을 빵에 넣어 먹을까.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고 한입 물었는데 예상외로 조합이 괜찮았다. 사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맛있기까지 했다. 처음이라 고등어 케밥을 찾아 헤맸지 나중에 보니까 다리 쪽에는 어딜 가나 흔하게 거리에서 팔고 있었다.
이스탄불은 터키 북서쪽에 위치한 앙카라와 함께 터키를 대표하는 도시다. 이스탄불의 지리적 중요성을 본다면 중동의 서쪽 끝에 위치해 유럽과 연결해 주는 교량이다. 다시 말해 이스탄불은 아랍 문화를 가졌으면서 유럽과 아랍의 교차점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터키의 다른 도시와는 다르다. 또 유럽의 다른 도시와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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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시민들이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
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걸으면 낚시하는 사람들이 즐비하게 서서 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그들은 갓 잡은 생선을 길가에서 팔기도 한다. 작은 낚싯배에서는 갓 잡은 생선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한다. 그 생선을 빵에 끼워 팔거나 밥과 야채를 곁들여 팔기도 한다. 역시 빵보다는 밥이랑 먹는 게 훨씬 맛있다. 신선한 생선들을 직화로 구워내니,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게 해주는 맛이다.
홍합을 쪄 양념한 것도 거리에서 파는데 그것 또한 별미다. 길거리 음식들이 정말 다양한 해산물이다. 홍합을 넣은 밥도 전혀 비리지 않고 맛있다. 고등어 케밥을 많이 먹다 보니 관찰을 하게 된 것이 있다. 고등어 한 마리를 어떻게 자르냐에 대한 관찰이다. 생선뼈를 중심으로 반을 자르는 경우와 교묘하게 3등분을 하는 경우가 있다. 여행자들이 많은 곳에서는 3등분을 해서 고등어가 별로 크지 않지만, 다른 곳에 가면 ‘정직한’ 고등어 반 마리가 나온다.
그렇게 해협을 따라 걷다 보면 칼리프의 다리를 걸어서 건널 수 있다. 다리 위에도 역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그 다리를 건너면 붐비는 건너편과는 달리 조용한 일상의 터키인들이 산다. 친절하고 밝은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온다. 이들의 일상에 끼어든 여행자들 또한 이들은 일상처럼 스쳐 지나간다. 다시 다리를 건너올 때는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다리 위에 서니 바닷바람이 여기저기서 불어온다. 이 바람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일까, 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일까.
여객선은 수시로 출발한다. 이스탄불 시민들의 대중교통 수단 가운데 제법 중요한 지위를 차지할 만큼 배를 많이 이용한다.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느낌이 들게 한다. ‘카드쾨(Kadikoy)’란 지역인데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지도로 확인한 다음에야 어디인지 알게 됐다. 무작정 배를 탔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 그곳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여행객이 아닌,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여행객인 나는 그들의 일상에 잠시 들어가 본다.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 점심시간에 거리로 나와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모든 것들이 익숙하게만 보인다. 히잡을 쓴 여자들을 빼면 말이다. 젊은 여성들은 검은 차도르를 입지 않아도 히잡은 꼭 두르고 다닌다. 나이든 여성들의 검은 차도르가 그들의 일상에 섞여 있으니 유럽 같으면서도 이슬람 문화권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다고 모든 터키 여성이 히잡을 쓰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디를 가나 돈은 터키 고유의 화폐인 ‘리라’와 함께 유로를 공용으로 쓴다. 과거 인플레이션 탓에 리라 가치가 너무 떨어져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숫자 뒤에 ‘0’이 몇 개는 더 붙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화폐 개혁으로 1리라의 가치가 1유로와 거의 같다. 현금자동인출기(ATM)에서 리라·유로·달러 등 화폐 종류를 선택해 뽑을 수 있는 것만 봐도 이 나라가 관광대국임을 알 수 있다. 또 얼마나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터키 정부의 생각과 달리 국민은 이슬람을 버릴 수가 없다. 불가리아조차 EU에 가입했지만, 바로 옆의 터키는 아직 EU 회원국들의 ‘초대’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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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최고 명물인 아야소피아성당. 서기 360년에 세워진 이 성당은 비잔틴 미술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성당 벽면의 빛 바랜 색과 주변의 푸르른 나무,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린다. |
여행자들이 많이 머무는 길은 ‘여행자의 거리’라고 불린다. 그곳은 이스탄불에서도 가장 유럽풍의 거리다. 내가 머무는 숙소는 여행자의 거리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라 나는 이곳에 오기 위해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꾸준히 들른 것은 노천 카페에서 낮에 맥주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점도 많고 여행사와 호텔도 많은 길이다.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한 버스표는 이곳 여행사에서 사도 된다. 수수료도 전혀 없이 버스터미널과 같은 가격으로 예매를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대개 터미널에 직접 가서 예매를 하는 편인데, 이번엔 이곳 여행사에서 불가리아행 버스를 예매한다. 불가리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가 베니스비엔날레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처음부터 비엔날레를 보려고 한 건 아닌데 우연히 이스탄불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기간을 알게 되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름다운 도시 이스탄불을 꿈속에 고이 담아 놓고 불가리아로 향한다.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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