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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부당한 갑을관계의 세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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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5-13 21:50:14 수정 : 2013-05-13 21: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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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적 위치 있을 때 갑될 공산 커
부당한 관계개선 큰 희생 치러야
최근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사건과 사고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 원인이 모두 갑의 횡포라는 것이다. 원래 계약의 당사자를 말하는 갑을관계는 대등한 것이다. 당연하다. 계약은 둘 이상의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나름의 이익을 위해서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의 갑을관계는 전혀 다르다. 갑과 을은 강자와 약자, 휘두르는 자와 휘둘리는 자, 가진 자와 없는 자, 누리는 자와 시달리는 자를 뜻한다. 왜 수평적 관계가 수직적 사회관계로 됐을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계약의 당사자들이 수(數)에서 크게 차이가 나면 수직적 갑을관계가 생성될 수 있다. 소수이면 갑, 다수이면 을이 될 공산이 크다. 독점적 지위의 탓이기도 하고 대체 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구직자나 대리점이나 고용인은 여럿이기에 쉽게 대체될 수 있지만, 기업은 소수이기에 맘에 드는 상대를 입맛에 따라 뽑을 수 있다. 말하자면 독점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집단은 구조적으로 갑이 된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경기가 호황이면 인력이나 대리점 구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또는 좋은 자격을 지닌 구직자나 고용인은 일자리를, 뛰어난 대리점은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파트너를 고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갑이 되는 일은 드물다. 경기가 좋았던 적이 있기나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기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더구나 정리해고가 기업이 애용하는 이윤 창출의 방법인 현 시점에서, 게다가 대기업의 덩치가 커지기만 하는 지금 구직자와 고용인과 대리점은 구조적으로 을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엄격한 수직적 문화와 관행이다. 한국에서 크고 작은 차이는 거의 예외 없이 수직 서열이 된다. 학교에서는 성적과 나이에 따라 학생의 서열이 매겨진다.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진학하는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 직장에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어느 직장을 다니는지에 따라 어깨의 넓이도 달라진다. 같은 직장이라고 차이가 없을까. 윗사람은 언제나 옳고, 아랫사람은 언제나 부족하다. 조직에서 지위의 차이를 상사와 부하로 표현하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이다. 서열은 결혼시장에서도 존재한다. 결혼을 알선하는 업체는 후보자를 각종 지표, 즉 연령, 학교, 직장, 재산, 용모로 엄격히 수치화해 한 줄로 세운다.

셋째, 갑의 동맹이다. 좋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기업이 구조적으로 갑이 되는 것을 일정 부분 수용해야 한다. 또 능력주의 사회이므로 능력의 차이에 따라 갑과 을이 나뉘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된다. 다만,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갑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뤄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수호하는 것이다. 갑이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할 때 을의 삶이 덜 고달프다. 그런데 기업과 정치권력과 법률 집단은 이해 연합과 혼인관계를 통해 단단한 동맹을 이뤄 각자 ‘갑질(갑의 부당행위)’에 충실할 수 있도록 뒤를 봐준다. 더 심각한 일은 갑의 지위에 따라 갑의 동맹도 세습된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은 다시 신분제 사회가 될 것이다.

처방은 단순하다. 슈퍼 갑의 동맹을 해체하면 된다. 또 언론이 그 일을 해주어야 한다. 믿을 것이 자신뿐이라면 을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노력해서 갑이 되든가, 아니면 서로 힘을 합쳐 갑에 저항하는 것이다. 전자는 부당한 갑을관계가 지속되는, 후자는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을의 선택은 무엇일까.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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