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새벽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깊은 잠을 깨운다. 스님이 열린 선방 문 사이로 해맑은 동자승 같은 얼굴을 내민다. 충남 예산 덕숭산 자락에 위치한 수덕사의 선승 우송 스님이다. 세속 나이 72세, 20세에 출가했으니 50년 넘는 세월을 산사에서 수행승으로 보냈다.
스님은 매일 맞는 아침 산사 풍경이지만 늘 경이롭다.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이 뭣고”가 터져 나온다. 고승의 화두 같지만 삼라만상의 신비에 대한 찬탄이다. 인간이 아무리 발달한 인지로 설명한들 작은 씨앗이 예쁜 꽃을 피우는 생명의 이치를 완전히 규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스님은 해석하지 말고 아는 체하지 말라 했다. 그저 찬탄을 하면 부처가 되고 부처를 맞이하는 문이 열린다고 했다.
부처님오신날(17일)을 앞두고 사찰 경내엔 연등이 내걸렸다. 아침 공양을 마친 스님이 차실로 이끈다. 스님은 중이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단 한가지 육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보고 싶다 했는데 가 뵙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같은 맥락에서 스승인 원담 스님이 입적한 후에도 상좌로서 너무 인색했음을 깨달았다. 수덕사 대웅전 큰 글씨를 써 주셔도 그에 대한 보시를 제대로 못해드렸다. 스승이 입적하고 14일 후에 뒷산에 오르니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었다. 진달래가 활짝 피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 하셨던 스승의 마지막 말씀을 그제야 깨달았다. 청산을 혼자 누리는 것이 못내 아쉬워 누군가를 기다리셨던 것이다. “이 뭣고”의 찬탄을 나누고자 하신 것이다. 대승의 길을 알려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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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 대웅전 앞에 선 우송 스님. 그는 “열렬한 박수와 꽉 잡아주는 악수가 보살행의 시작”이라며 “심장이 뜨거우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그것이 세계평화의 실마리가 된다”고 강조했다. |
스님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다하는 자세가 보살행이라 했다. 그러면 활짝 웃게 되고 심장이 열린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바라는 마음은 심장을 쪼그라들게 하지만 베푸는 것은 심장을 뜨겁게 해주지. 탁발은 주는 자에게 보살행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는 거야.”
스님은 하늘과 땅, 모든 친구들이 신비롭게 다가오는 것이 “이 뭣고”라고 했다. 이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대한 극찬이라고 했다. 모두가 부처인 생명의 자리다. 보살행, 즉 생명의 자리를 닦는 일이다. 붓다의 성불 후 보살행도 같은 맥락이다.
스님이 작설차를 10번 이상 숙성시킨 차를 내놓았다. 은은한 맛이 혀를 길고 깊게 감돈다. 산사 종소리의 여운 같다. 위장과 심장의 맥을 저하하는 요소를 잡기 위해 산정약수를 비롯한 모과 진액, 지삼 진액, 와인 등을 효소로 삼아 10번 이상의 발효와 건조 과정을 거친 차다.
“10번 이상의 발효과정은 차가 원하는 것을 읽어내 그것에 맞게 보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원하는 것을 알면 길이 보이게 마련이야. 아들 10명에 며느리가 10명이면 자기들끼리는 시비가 잦게 마련이야. 하지만 어머니 한 분으로 올라가면 모든 것을 수용하는 큰 사랑 한 모습만 있지. 법은 하나라는 얘기야.”
차를 위해 보시하니 “이 뭣고”의 차 맛이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스님은 차 맛의 한계를 짓지 않는다. 앞으로도 끝없이 차 맛은 진화해 나갈 것이다. 성불 후 보살행처럼.
점심 공양 후 스님은 자리를 함께 한 몇몇 신도에게 ‘보리밭’ 등 가곡을 부르게 했다. 생음악은 식사 후 위장을 정렬해 주는 데 특효라 했다. 노래가 맥을 터주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노래가 끝나자 손을 눈 높이로 올려 힘껏 손뼉을 치게 했다. 열렬함, 그것이 보시이고 보살행의 출발이라 했다. 몸의 혈이 터지니 타인에게도 마음이 열린다는 것이다. 신도와의 ‘작은 법회’는 그야말로 너와 내가 하나 되는 화동의 시간이다. 첩첩산중 노승의 한없는 인자함의 모습이다. 스님은 같은 박수라도 북한식 박수는 가슴을 쪼그라들게 만든다며 북한의 현실을 연결시켰다.
경북 군위 농촌마을에서 자란 스님은 출가 무렵 집에서 30리 길의 작은 암자를 드나들곤 했다. 달밤에 젊은 스님들과 함께 산나물에 찬밥을 맛있게 비벼 먹었던 기억은 지금도 선하다. 천수경 독경소리는 가슴을 진동시켰다. 무엇보다 스님들이 시간이 많은 것 같아 이끌렸다. 왠지 스님이 되면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자를 떠나는 스님이나 배웅하는 스님이나 멀리 배웅하고 또 돌아서 화답하는 모습도 너무 정겨웠다. 얼마 후 스님은 수덕사에서 발행하는 간행물을 읽고 바로 수덕사로 입산하게 된다.
사실 스님은 10대 때부터 또래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산비탈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사람이 죽으면 어찌 될 거나’ 하며 땅이 꺼져라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한낮 그림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도 예민했다. 섬뜩할 정도로 자신을 돌아본 것이다. 보고 듣는 것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다시 바라보았던 것이다.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다름 아닌 존재에 대한 성찰이었다.
“초파일 즈음에 산나물 뜯어다 비빔밥을 비벼 먹던 그 시절 도량이 지금도 아련해 어느 해 초파일 밤 자정 즈음에 대웅전 앞마당에 서서 연등 바다에 떠 있는 탑 머리를 보게 됐지. 천등만등의 고요가 찰싹찰싹 해조음처럼 만고 신비를 다 드러내 보여주는 것 같았어. 그것을 보면서 모든 것을 흐르게 하고, 숨 쉬게 하고, 살게 하는 것이 부처의 법이란 걸 깨달았지. 화를 내면 혈맥이 막히니 부처님께 중죄를 짓는 거야. 밝게 웃어 줘야 막혔던 것이 시원하게 터져서 부처님께 공양이 되지. 숨과 혈맥을 통하게 하는 것이 생의 명령이자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이지.”
스님은 누구에게 바라는 생각을 이제는 끊고 밝게 활짝 웃어 주자고 설법을 했다. 그러면 어느 사이 하늘이 와 있고 땅이 와 있고, 모든 이웃이 와 있는 극락의 세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스님은 이런 생의 절대자리를 찬탄하라 한다. 이 찬탄의 힘이 목숨을 튼튼하게 해주고 만사형통케 해준다는 것이다.
“풀잎 하나에도 우주의 축이 담겨 있지. 모든 존재에 별도의 에너지가 있는 것이 아니야. 모든 존재는 하나하나 상생의 에너지만 있지. 전부가 관세음보살이지….”
스님은 절 문을 지키는 경비아저씨에게도, 지나가는 개에게도 ‘관세음보살’ 예를 갖춘다. 그러면 미안한 마음과 적의가 사라진다. 짓던 개도 돌아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결국 덕은 스님이 챙기게 된다.
스님은 혈기방장하던 시기에 하안거를 끝내고 진주의 한 허름한 식당에 들른 적이 있다. 식당에서 일하고 있던 아가씨가 물끄러미 스님을 쳐다보며 “세상의 낙이 뭣고”라며 혀를 찼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나름대로 딱해 보였던 것이다. 그 아가씨의 풋풋한 표정에 차마 답을 할 수 없었다. 선승으로서 한평생 수행 길로 스님은 답을 대신해 가고 있다.
모든 것, 모든 이에 열렬히 찬탄하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스님이 주는 메시지다.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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