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엇의 시들을 바탕으로 창작된 뮤지컬 ‘캣츠’는 재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황무지’에서와 같은 불모의 느낌이 아닌 희망을 노래한다.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토대로 한 고양이 캐릭터들이 우화적으로 인간 세상을 풍자하고, 웃음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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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캣츠’에서는 가장 늙고 쇠락한 잿빛 고양이가 구원받아 환생한다. |
그리자벨라는 한때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모두가 선망하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무리를 이탈하여 험한 일들을 겪고는 늙고 쇠락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다른 고양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경멸받는 처지에 이른다. 그러나 자신의 눈부셨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메모리’를 열창하여 고양이들의 심금을 울린 후 돌아온 탕아로 받아들여진다. 극은 그녀가 천상세계인 ‘헤비사이드 레이어(Heaviside Layer: 지상 100km의 전리층)’에 우주선을 타고 올라가면서 마무리된다. 이는 죽음을 의미하는 듯도 보이지만, 그보다는 환생을 내포한다.
그리자벨라의 어원은 회색이라는 뜻의 그리즐(grizzle)과 아름답다는 뜻의 벨(belle)이 합쳐진 합성어이다. 말하자면 잿빛으로 퇴색된, 시간의 흔적이 만들어낸 노년의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주인공의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작품은 스러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을 담고 있다. 아울러 등장인물들은 영국의 영화롭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일면이 있다. 그리자벨라는 빅토리아 여왕을, 기차 고양이는 산업혁명을 연상시킨다. 빅토리아 시대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중풍에 걸려 몸을 쓰지 못하는 극장 고양이도 한몫한다.
그러나 이 공연은 지난 세월에 대한 향수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보다는 사멸하는 것들로부터 재생되는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계절에 비유하자면 비극은 겨울에, 희극은 봄에 끝을 맺는 장르다. 그런 점에서 희극은 비극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의 생명은 다른 생명의 죽음 위에서 태어나고, 봄이 움트기 위해서는 죽음의 계절을 지나야 한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는 한편으로는 잔혹해 보이지만 세상이 파국을 맞지 않고 새로운 에너지로 끊임없이 재생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뮤지컬 ‘캣츠’는 원작 시들이 작가가 사망한 후 새로운 시대의 장르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종이에 잠자고 있던 시구들을 서정적인 선율 위에 살려낸 것은 ‘오페라의 유령’,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의 작곡자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다. 덕분에 엘리엇은 하늘나라에서 ‘토니상’의 ‘작사상’을 수여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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