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석(45)은 6일 개봉한 ‘남쪽으로 튀어’의 시나리오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이 영화를 가장이자 중년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봤다.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최해갑’은 꿋꿋이 소신을 지키는 무정부주의자다. 백수에 가까운 독립영화 감독이라 도통 돈 나올 구석이 없지만 가족과 따뜻한 관계를 유지한다.

“인간은 누구나 일탈 욕구가 있지 않나요? 제 일탈은요. 결혼을 안 했다면…. 하하. 일탈이죠. 이루어질 수 없는 거고. 만약 혼자 산다면 어떨까, 그러면 자식도 없을 거고 나는 혼자 자유인처럼 막 다니겠지, 이런 상상은 해봐요. (현재 모습에) 전혀 섭섭하지는 않아요. 그냥 그랬으면 어떨까라는 거죠.”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20년 뒤 제3의 길을 걷는 최해갑은 김윤석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1980년대 후반 학번인 그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역시 “학교 다닐 때 데모가 어마어마했고, 화염병과 최루탄 냄새를 맡았으며, 한 학기의 반 정도가 휴교 상태”였다. 시나리오를 보니 ‘아, 그 놈들 어떻게 지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그는 임순례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여성 감독이어서 다른 점은 없었다. 촬영현장에서는 성별을 따질 겨를이 없다. 그는 “이 영화가 되게 느긋하게 가고 코미디도 ‘빵’ 터트리기보다 소소하게 주면서 절제하는 힘이 있는데 그런 게 감독님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김윤석의 그간 출연작 중 이번 영화는 ‘추격자’ 등과 달리 힘을 빼고 연기한 쪽이다. ‘완득이’ ‘거북이 달린다’와 비슷하다. 그러나 세 역할 모두 같은 듯하면서도 예리하게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그는 정확한 연기의 비결로 “이야기의 진정성을 파고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다.

김윤석이 흥행 배우가 된 데는 연기력 못지않게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도 한몫했다. 그는 연극을 하면서 해석이 모호한 외국 작품은 원서까지 읽을 만큼 치열하게 작품 분석에 매달렸던 시절이 시나리오를 고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밝힌다. 이번에는 더 나아가 ‘남쪽으로…’의 각색에 이름을 올렸다. 시나리오를 쓰는 싶은 꿈 역시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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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은 연극무대에 다시 서는 데 대해 “무섭기도 하다”며 “연극은 체력이 좋아야 할뿐더러 발성 방법도 많이 달라 최소 1년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정탁 기자 |
그의 출연작 중에는 신파 코미디가 없다. 그는 “사람과 사람의 상황이 주는 코미디가 재밌지, 캐릭터가 개그화되는 코미디는 좀… 어느 순간에 보다가 스스로 경직된다”고 말했다. 김윤석은 ‘남쪽으로…’를 ‘치유 영화’로 정의했다. “획일화되고 출퇴근하고 돈 걱정하고 자식교육에 매달리며 쌓인 독소가 영화를 보는 동안 시원하게 해소되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전했다. 이 영화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의 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길 바랐다. “어차피 엄마 아빠 다 공부 못했으니 공부 갖고 뭐라지도 않을 거고,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행복한 시대가 왔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지난 20년간 운동권 친구들이 제 갈 길을 갔듯이 김윤석은 연극 무대를 거쳐 영화계의 최정상에 섰다. 그간 가장 큰 변화를 묻자 “돈을 많이 벌었잖아요. 연극을 할 때는 1년에 17만원 벌 때도 있었는데”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돈을 번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좋아요. 나를 찾는 사람이 계속 있다는 게. 한대수 선생이 귀국 인터뷰에서 ‘나이 들어서 가장 큰 행복이 뭐냐’는 질문에 ‘일하는 것’이라고 답했는데 맞는 것 같아요. 일을 하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되고 그런 게 가장 행복한 것 아닌가.”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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