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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獨 나치만행 반성의 해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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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2-04 15:30:53 수정 : 2013-02-04 15: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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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역사 바로 세우기… 신뢰쌓고 EU 중심국 부상
1970년 브란트 총리 무릎사죄 이후 역대 정상, 전쟁희생자에 계속 사죄
해마다 희생자 추모 행사·전범 심판… 전시·콘서트 등 통해 과거 역사 교육
침략 과거 부인한 日과 뚜렷한 대조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유대인 위령탑에 헌화를 하던 중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희생된 폴란드 유대인에게 사죄한 것으로, 계획에 없던 행동이었다. 추운 겨울날 콘크리트 바닥에 꿇어앉은 그의 모습은 모두에게 깊게 각인됐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정치적 사죄’로 꼽히는 장면이다. 언론은 “무릎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가했다.

40여년 전 브란트 총리부터 최근 앙겔라 메르켈 총리까지 독일 정상은 끊임없이 2차 대전 희생자에 대한 사죄의 뜻을 나타냈다. 베를린은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 80주년을 맞은 올 한 해에 걸친 대대적인 ‘사죄의 이벤트’를 준비했다. 나치 시절을 되새기는 독일 사회의 과거사 반성은 주변국과 신뢰를 쌓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 열리는 히틀러 집권 80주년 관련 전시 상징물. 쿨투르프로예크테
베를린 제공
◆1년 내내 이어지는 사죄의 이벤트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30일 “나치가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과 함께한 독일 지식인과 이를 묵인한 사회 때문”이라며 “독재자가 독일 사회의 다양성을 쓸어버리는 데 걸린 시간은 단 6개월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히틀러가 독재자로 군림하며 자행한 각종 비인간적, 비인도적 범죄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이 사실은 우리 독일인에게 영원히 경고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월 30일은 1933년 히틀러가 총리직에 임명돼 나치가 처음 정권을 장악한 날이다.

바로 며칠 전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27일)에도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우리는 나치의 각종 범죄, 2차대전 희생자, 무엇보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베를린은 히틀러의 권력 장악 80주년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시작된 ‘수정의 밤’(1938년 11월 9일) 75주년을 맞아 올해의 테마를 ‘파괴된 다양성(Zerstoerte Vielfalt)’이라고 정했다. 시 차원의 ‘반성의 해’로 선포한 셈이다. 히틀러와 그에 동조한 당시 시민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1년 내내 전시, 콘서트, 콘퍼런스 등 이벤트 500여개가 열린다.

히틀러가 총리로 지명된 다음날 나치 선동가 요제프 괴벨스는 일기에 “시간이 됐다! 우리는 빌헬름 거리에 있다. 히틀러는 독일제국의 총리다. 동화처럼”이라고 썼다. 바로 이 빌헬름 거리에 있는 ‘테러의 토포그라피 박물관’에서 히틀러의 집권 첫 한 달 동안의 족적을 쫓는 사진과 신문기사, 포스터 등이 전시된다.

다른 행사도 80년 전 역사적 사실을 후대에 알릴 수 있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춰 기획됐다. 히틀러가 총리가 되자마자 이를 축하하는 수천명의 횃불 행진이 열렸던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파리저 광장에서는 지난달 30일 당시와 같은 행렬이 재연됐다. 또 올 연말까지 시내 곳곳에서 나치 시절 박해받았던 200명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야외 전시가 열린다. 독일역사박물관에서는 나치 집권이 독일 사회에 미친 결과물에 대한 전시가 11월까지 진행된다. 관광객을 위해 나치 시절 역사적 장소를 소개해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제공되고 있다.

◆끝없는 반성으로 주변국 신뢰 얻어

독일은 2차 대전 이후 책임을 인정하고 부단한 사죄·배상 노력을 해왔다. 좌파였던 브란트 전 총리든, 우파 메르켈 총리든 독일 정치인은 이념과 상관없이 일관성 있게 이스라엘, 폴란드를 비롯한 주변국에 사죄 발언을 했다.

말에 그치지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조치도 이어졌다. 독일 정부는 지금까지도 2차 대전 전범을 조사해 재판대에 세우고 있다. 기념일을 정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는가 하면 만행을 저질렀던 역사의 현장을 보존해 교육의 장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30일 히틀러의 총리 취임을 반성하는 임시 의회가 열린 뒤 노르베르트 람메르트 하원 의장은 “(역사의) 증인은 세대를 이어 증인의 증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이런 역사의식은 주변국과의 대립이 영토상실과 분단을 불러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직후 독일의 화해와 협력 자세는 주변국의 안보적 우려를 불식시켰다. 결국 주변국 신뢰와 함께 유럽 통합이 진행됐고 독일은 오늘날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중심국이 됐다.

메르켈 총리와 독일의 반성 움직임에 영국, 프랑스 등 주변국 언론도 호의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독일에서 나치 시절의 만행을 조명하는 국가적 이벤트는 이러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독일과 같은 전범국 일본을 비교한다. 최근 일본 정부는 침략적 과거를 부정하는 우경화 성향으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다. ‘죄의 값: 독일과 일본의 전쟁의 기억’의 저자 이언 부루마는 “독일은 충분히 사과했지만, 일본에는 브란트 총리도 없고 잔혹 행위를 행한 지역에 가서 무릎을 꿇는 총리도 없다”고 꼬집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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