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엔 뭐하고 지내나요.
"가을엔 언제나 바빠요. 1년 중에 가장 활동을 많이 하는 시기가 가을이에요. 9월부터 12월 중순까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한다고 보면 돼요. 올해는 찬바람이 좀 일찍 부는 것 같네요. 찬바람이 불고 겨울로 접어들면서 조금 한가해진 상태예요. 그리고 올해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작년보다는 겨울이 더 빨리 찾아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솔직히 첫눈 온다는 것은 저에게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에요. 가을이 더 짧아진 셈이니까요. 주로 공개방송, 산사음악회, 지자체 행사 등에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실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직장을 다니다가 27세, 늦은 나이에 음악 세계에 입문했죠. 제가 집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는데 아는 선배의 추천으로 전 동양챔피언 권투선수 고생근 씨가 운영하던 ‘챔피언’이라는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하게 됐어요. 직장 다니는 것보다 월급이 많을 거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는 기타치고 노래하는 건 취미로만 했지요. 제가 제주도 출신인데 1970년대 후반에 원두커피가 한창 유행하던 때였어요. 제주 중앙로타리에 ‘만우리’라는 커피숍이 생겼는데 그 커피숍에서 통기타 동아리가 결성돼 저도 참여했죠. 저희 동아리가 제주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방송국 관계자 분이 저에게 말씀하시길 “네 자신을 시험하고 싶다면 종로의 ‘약속’이나 ‘꽃잎’이라는 클럽에 가고, 명동 ‘쉘브르’에 꼭 가보라”고 하셨어요. 마침 제 친구가 남자친구 만나러 서울에 간다고 해서 저도 같이 갔는데 약속 장소가 명동이었어요. 명동 거리를 거니는데 어딘가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봤더니 그곳이 바로 ‘이종환의 쉘브르’였어요. 쉘브르 클럽에 들어갔는데 운 좋게도 그날이 콘테스트가 개최되는 날이어서 즉석에서 기타를 빌려 오디션을 봤고 한 번에 합격을 하게 됐죠."
― 앨범을 내게 된 계기는.
"1985년에 함께 했던 박강성 씨에게 예당 기획(당시 여의도 기획)의 민재홍 씨가 음반을 내준다고 했었나 봐요. 당시 박강성 씨도 신인인 때라 정규 앨범은 못 내고 옴니버스 앨범을 내게 됐는데 저한테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하더라고요. 저도 옴니버스 앨범에 참여하게 됐어요. 당시엔 LP판으로 제작이 됐었죠. 박강성 씨 외 4명이 참여했어요.(저와 방송작가 구자형 씨, 전 KBS 아나운서 김현경 씨, 부산에 살고 계신 한 분) 앨범제목은 ‘별들의 속삭임’이었고 박강성 씨의 ‘색연필로 동그랗게’라는 곡이 타이틀로 LP 앞면을 장식했고, 제 곡 ‘가을 사랑’과 ‘사랑 그리고 이별’은 뒷면에 실렸습니다."
― ‘가을 사랑’, ‘사랑 그리고 이별’ 활동 당시 에피소드는.
"제 노래 대부분은 민재홍 씨가 곡을 쓰셨어요. ‘사랑 그리고 이별’은 민재홍 씨 친구의 얘기에요. 여자 친구가 편지 한 장만 남겨놓고 사라졌는데 알고 보니 한센병 환자였다고 하더라고요. 편지 내용이 결혼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한센병 환자라고 판명이 나서 다른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라며 떠나는 내용이었어요. 당시 한센병은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었거든요. 그 친구라는 분이 너무 황당해서 민재홍 씨한테 편지를 보여줬는데 악상이 바로 떠올라서 만든 곡이 ‘사랑 그리고 이별’이라는 곡입니다. 그런 인연으로 제가 소록도에서 공연을 몇 차례 했어요.
‘가을 사랑’은 활동 당시 이덕화 씨가 진행하던 음악프로그램에서 12위까지 했어요. 오히려 2000년대에 들어서 ‘가을 사랑’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아요.
2집 제작 당시 민재홍 씨가 미국 뉴욕으로 이민 가 있을 때였는데 앨범 제작 때문에 회사에서 한국으로 불렀어요. 민재홍 씨가 일본노래를 듣고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서 가사를 썼는데 그 곡은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이선희 씨나 신효범 씨에게 주려고 했던 곡이에요. ‘이 세상에 태어나 어느 하나를 만나서 사랑하며…’라는 가사를 듣고 곡이 너무 좋아서 제가 부르게 해달라고 했죠. 민재홍 씨는 저에게 맞는 곡이 아니라고 했지만 고집을 부려서 제가 부르게 됐죠. 바로 ‘안개 걷히는 날’ 얘기에요. 곡이 제 조용한 이미지와 다르다보니 지금도 제 노래가 아닌 줄 알고 있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지금도 이 노래를 마지막에 부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공연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생각해요. 1989년에 첫 단독 콘서트를 신촌 크리스탈 백화점 챔프소극장에서 했는데 12월 29~31일 1일 2회 공연이었어요. 처음에 제가 콘서트를 하지 말자고 했어요. 당시 연말 콘서트라고 하면 내로라하는 가수들만 하는 건 줄 알았거든요. 장소를 미리 예약해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요.(웃음) 첫날은 순조롭게 지나갔는데 이틀째부터 관객이 밀리기 시작한 거예요. 다음회 공연으로 밀리다 보니 마지막 31일에는 4회 공연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마지막 날 4회 차 공연 마지막 앙코르 때 ‘쿵’ 하는 소리가 나서 뭔가 했는데 알고 보니 코러스 해주던 친구 한 명이 과로로 쓰러진 거예요. 그 친구가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하고 제 콘서트에서 코러스 하니까 잠 잘 시간이 없었던 거죠. 콘서트에서 코러스가 쓰러진 건 전무후무한 이야기일 겁니다.
1991년에 3집 앨범이 나왔는데 박찬일 씨가 ‘사랑을 위하여’라는 곡을 만들어줬고 이시우 씨가 ‘우연’이라는 곡을 줬는데 홍보도 못해보고 묻히게 됐어요. 그 이후 제가 1991년에 예당 기획을 떠났고 1992년에 상승기획이라는 회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故 박용하 씨의 아버지인 박승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회사였는데요. 메인 가수가 송창식 선배였어요. 당시 제주를 제외한 전국을 돌며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했어요. 지금도 대학 축제 때 공연이 정말 최고였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지금은 대학 축제에서 공연할 수 없지만요.(웃음)
앨범 외에도 제가 부른 곡이 있는데요.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 OST ‘마네킹 신부’라는 곡을 불렀어요. ‘가을 사랑’도 OST에 삽입됐고요. 당시에 주인공이었던 최재성 씨와 OST에 참여한 가수 정수라 씨, 그리고 제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그 외에 <지옥의 링> OST, <사랑을 위하여> OST에도 참여했어요."
― 현 소속사 대표인 남편과는 어떻게 만났나요.
"인연이라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가수들이 라이브 카페에서 얼마나 많이 노래를 했겠어요. 가수가 한 두 명이 아니잖아요. 라이브 카페 사장님을 만나서 결혼하게 됐는데, 원래 사업을 하던 분이고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라이브 카페 사업도 한 거였죠. 제 남편은 숭실고 합창반 출신이고 교회 성가대에서 항상 활동했어요. 사실 저보다 노래를 더 잘해요. 목소리도 좋고 끼도 저보다 더 많고요.
하루는 경기도 하남에 있는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하는데 탤런트 김홍석 씨가 오셔서 서울 발산동 근처에 좋은 카페가 있다고 ‘수와 진’의 안상수 씨와 저를 추천하고 싶다 하더라고요. 박강성 씨와 하남석 씨가 그 곳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어요. 당시 제 남편이 하던 발산동 라이브 카페 전단지가 집에 와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눈에 확 띄는 거예요. 전단지에 카페에 대한 소감을 써놨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직접 쓴 거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다른 카페에서 공연을 할 때 친구들과 몰래 왔었데요. 일종의 오디션이었겠죠?(웃음) 남편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당시 제 이름을 듣고도 누군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선배 가수 얘기를 들어봐도 직업을 모르고 만난 경우가 많더라고요. 인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해요. 노래하는 모습보다는 사람을 먼저 봐서 인연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 2010년 25주년 콘서트는 어땠나요.
"남편이 적극 추천을 해서 하게 됐죠. 제가 1991년 이후에 단독 콘서트를 한 적이 없거든요. 15년 만에 콘서트를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됐죠. 정말 많은 분들이 전국 각지에서 와주셔서 아직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팬들이 결혼을 해서 가족과 함께 와주셨더라고요. 영등포 아트홀에 600석이 꽉 찼어요. 정말 뿌듯했답니다. 이후에 전국 투어를 했어요.
2011년 1월에 앙코르 공연을 했는데요. 가수들은 대개 1월에 공연을 안 합니다. 관객이 많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 콘서트에는 객석이 꽉 찼어요. 앙코르 공연 때 생각나는 것은 제 노래를 좋아하던 전북 부안에 사는 팬에 관한 일이에요. 그 친구가 지금 이화여대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는데 가게 지하실에 무대를 완벽하게 꾸며놨더라고요. 그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인데 예전부터 제 콘서트를 열어주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의 마음에 용기를 얻어서 1월에 콘서트를 하게 됐죠. 그 친구가 앙코르 공연 때 무대에 나와 노래를 했어요. 그 친구는 꿈을 이룬 셈이죠. 제가 관객들에게 그 친구를 소개하며 꿈을 간직하면 나이에 관계없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니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25주년 콘서트 때 도와주신 해바라기 이주호 선배, 추가열 씨, 이치현 선배, 유익종 선배, 김도향 선배, 임지훈 선배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 기억에 남는 팬은.
"최근에 대전에 있는 박물관에서 공개방송을 하는데 관객 한 분이 어린 딸을 데리고 와서 아이에게 “네가 잘 모르겠지만 이 분이 지금의 아이유만큼 인기가 많았단다”고 하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아이의 아버지가 정말 열광하고 좋아하던 노래가 ‘가을 사랑’과 ‘사랑 그리고 이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1988년에 처음 콘서트를 할 때 신촌에 있는 소극장에서 했는데요. 그 포스터와 티켓을 간직하고 있다가 2000년 공연 때 가지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소장하고 있지 않은데 진짜 감동을 받았어요. 또 다른 분은 옴니버스 앨범 LP판을 가지고 오셔서 사인을 해달라고 했어요.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는 게 참 고맙더라고요.
지금 부산MBC에 있는 부장 PD도 기억나는 팬이에요. 대학 시험 합격 통보 날 부산 MBC 앞을 지나는데 ‘안개 걷히는 날’이 나오더래요. 기분이 묘하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합격해서 제 노래를 평생 잊지 못할 노래라고 하더라고요."
―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매일 목소리를 가져가지 말고 제가 힘이 닿는 데까지 노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80세까지 지금 목소리 그대로 노래하는 것이 꿈입니다. 잘 아는 방송국 PD랑 농담 삼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70~80대 때 시니어 방송국을 만들어서 함께 방송을 해보자고요.(웃음) 팬들과 같이 호흡하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음악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같은 가수로 기억 되고 싶어요. 그분은 가정이나 대외적인 면 등 모든 면에서 성공한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를 유지하는 거예요. 언제 들어도 한결 같은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주가 되는 거니까 하루하루 소중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요일마다 색깔이 있듯이 여러분들도 어제는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더라도 내일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시고 늘 건강하세요.
지금까지 지면에 실린 가수들을 보면 동안이라며 외모를 자랑하잖아요. 항상 음악을 가까이 하면 동안 외모를 유지하실 수 있을 겁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음악을 가까이 하셨으면 좋겠네요. 내년에 신계행 5집 앨범 발매 예정이니까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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