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감찰’ 발표에 檢 발칵… 대검 간부, 오전 ‘퇴진’ 건의
뒤이어 기획관 등 2차 담판… 韓 “개혁안 내고 나가겠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대검 차장 등 간부들의 만류에도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사실이 알려진 시점부터 사의를 표명하기까지는 채 20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불과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검찰 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각에서는 권재진 법무장관의 만류에도 총장이 개혁안 발표와 감찰 내용 브리핑을 고집하고, 사표 제출 의사를 표명한 이후에도 브리핑을 강행한 것으로 미뤄 이번 사태의 ‘여진’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총장 사표로 이어진 이번 사태의 단초는 28일 오후 6시 대검 감찰본부의 긴급 브리핑 공지에서 시작됐다. 잇따르는 검사 비리 속에서 ‘별거 아닐 것’이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감찰 대상이 중수부장이라는 사실은 귀를 의심케 할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한 총장이 특임검사팀으로부터 일부 수사자료를 넘겨받은 후 감찰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검찰 내부는 요동쳤다. 최 중수부장이 대학동기인 서울고검 김광준 부장검사에게 문자메시지로 언론대응 방안을 알려준 게 품위손상 비위라서 감찰에 착수했다는 것.
중수부 연구관들을 시작으로 대검 간부와 일선지검 부장검사들이 퇴근 후 검찰청에 모여 동시다발적인 비상대책회의를 가졌다. 총장 퇴진, 감찰 철회 등의 주장이 이어졌고, 평검사들 사이에서는 연판장까지 돌리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늦은 시각 대검 간부와 부장검사들은 평검사들의 집단행동을 최대한 자제시키고, 총장에게 ‘용퇴’를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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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 검찰총장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특수부장회의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한 총장 용퇴를 가장 먼저 건의한 것은 같은 건물의 대검 간부(검사장)들이었다. 이날 오전 9시 이후 총장실로 몰려간 간부들은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명예롭게 퇴진하시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다. 한 총장은 “그럼 너희들도 같이 나가라”고 소리쳤고, 간부들이 ‘동반 사퇴’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자 “그러면 너희는 관여하지 말라”고 맞서면서 1차 담판은 싱겁게 끝났다.
급기야 대검청사 8층 총장실로 향하는 복도에는 노란 가림막이 설치됐고, 정오까지 총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서울중앙지검 부장들이 총장실을 항의 방문하겠다는 사실이 공지되면서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전개됐다. 연이어 대검 기획관들, 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이 총장을 만났다. 결국 이 자리에서 총장은 “내일 예정된 자체개혁안을 발표하고 사표를 내겠다”고 말하면서 오후 1시40분쯤 사의 표명에 대한 공식입장이 나왔다.
지휘부 갈등이 봉합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무렵 감찰본부의 중수부장 관련 2차 브리핑이 공지됐다. 법무장관이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브리핑을 더 하지 말라”고 만류한 것을 총장이 묵살하고, 발표문까지 직접 작성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런 정황을 뒷받침하듯 전날 브리핑한 감찰본부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박계현 대변인이 문건 배포로 갈음했다. 박 대변인은 ‘총장 지시로 봐도 되느냐’는 질문에 고개만 끄덕였다. 한 총장을 둘러싼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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