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안은 오바마 축제의 장 만들어 김영삼 후보는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시종 앞서다 결선투표서 이철승 후보의 협조를 얻은 김대중 후보에게 역전패했다. 김영삼은 패배를 승복하고 부산지역에서 김 후보 선거운동을 벌였다. 정동영 후보는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 막판까지 도전했으나 패한 뒤 노무현 선대위의 국민참여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이와 달리 한국 정치사에는 분열이 더 많았다.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한 뒤 대선에 출마했다. 이때 ‘9룡’이라며 경선에 나왔던 박찬종 이수성 이한동 후보 등은 모두 대선과정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등을 돌리거나 비협조로 일관했다.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 민자당 경선에서 이종찬 후보는 김영삼 후보와 붙었지만 세 부족을 확인하고 경선 이틀 전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곤 탈당한 뒤 정주영 후보의 국민당을 거쳐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 국정원장의 자리를 차지했다.
경선승자와 패자의 관계는 아니지만 정치적 연대의 뒤끝도 다 좋지 않았다. 김대중·김종필(DJP) 연대는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지만 양김씨는 권력의 지분을 놓고 다투다 임기 도중에 결별했다. 노무현과 정몽준 후보는 2002년 대선과정에서 집권을 위해 전략적인 접근 끝에 여론조사로 단일화했지만 선거일 하루 전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헤어졌다. 한국의 정치판은 기본적으로 배신의 DNA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 |
| 2008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오른쪽)는 민주당 경선 맞수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새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임명하면서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힐러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한 팀이 돼 부통령 이상의 권한을 갖고 세계가 좁다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2000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존 매케인 후보는 치열하게 맞붙었던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패하자 깨끗이 승복하고 대선 과정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승자인 부시는 경선이 끝나자 최고의 예의를 갖춰 패자 매케인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2004년 민주당 존 케리 후보는 경선에서 자신을 거칠게 공격한 존 에드워즈 후보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 함께 선거를 치렀다.
승자는 관대하고 패자는 승자를 인정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포용력은 어디에서 나오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라이벌팀’ 구성에서 영향받은 바 크다. 링컨은 대선 경선에서 무차별적으로 자신을 비난한 라이벌 후보들을 대선 후 국무 재무 법무 장관 등 요직에 기용했다. 이를 ‘라이벌팀’이라고 부르며 이 선례로 미국의 정치판은 축제의 장이 됐다.
백영철 정치전문기자 iron100@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연명 의료 중단 인센티브](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17/128/20251217518575.jpg
)
![[세계타워] 같은 천막인데 결과는 달랐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17/128/20251217518533.jpg
)
![[세계포럼]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라고?](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09/10/128/20250910520139.jpg
)
![[열린마당] 새해 K바이오 도약을 기대하며](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17/128/20251217518355.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