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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꿈틀거리는 일본의 ‘전쟁 DNA’

입력 : 2012-08-10 18:01:49 수정 : 2012-08-10 18: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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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A급 전범 도조의 일기·메모 토대
“이런 보잘것없는 인물이 시대를 움직였는지” 성찰
日 우익세력의 도조 범죄 정당화 움직임 우려
“군인이야말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한 그는 국가를 병영으로 바꾸고 국민을 군인화하는 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여겼다. 그런 그는 적어도 20세기 전반의 각국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인물이었다. 왜 이러한 지도자가 시대와 역사를 움직였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나라가 가장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다.” 진보적 논픽션 작가로 이름이 높은 호사카 마사야스(72·사진)는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군국주의에 가장 천착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오로지 지식인의 책임을 느껴 잘못된 역사를 되새김하자고 말했다. 저자는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를 통해 아직도 꿈틀거리는 일본의 전쟁 DNA의 원인을 깊이 있게 파헤친다. 왜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일으켜 자신과 조국, 인류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는지 가급적 거시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미국 진주만 공격에 선봉역할을 수행한 일본 해군의 전함들.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중일전쟁 등 일련의 전쟁으로 힘을 키운 일본은 아시아를 제패하고 미국까지 넘봤다.
호사카 마사야스 지음/정선태 옮김/페이퍼로드/3만8000원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광기의 시대와 역사에 휘말린 초라한 지도자의 초상/호사카 마사야스 지음/정선태 옮김/페이퍼로드/3만8000원


책은 도조 히데키의 일기와 메모 등을 토대로 급박했던 전시상황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해 읽기 편하다.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일본을 세계의 열강으로 키운 힘은 전쟁이었다. 일본은 청일전쟁·러일전쟁·제1차세계대전·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불장난으로 조선과 중국을 손에 넣었다. 일련의 전쟁으로 힘을 키운 일본은 아시아를 제패하고 미국까지 넘봤다.

최악의 폭력행위인 전쟁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국가에서 군인은 가장 강력한 집단이었다. 제국 일본 패망 이전 수상을 지낸 사람 중 군 출신이 적지 않다는 것은 근현대 일본 정치의 허구였다. 도조 히데키는 군인이 최고 엘리트로 대우받던 시대에 성장했다. 군대를 가장 성장시킨 인물도 도조 히데키였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의 궤적은 근현대 일본 역사와 거의 일치한다.

“황공하옵게도 늘 평화를 애호하시는 폐하의 책임도 아니며, 나의 지도 아래 애국의 열성에 불타 온 나라가 하나가 되어 희생을 견디며 활동한 국민의 죄도 아니고, 나의 지도 아래 일한 동료 여러분의 책임도 아니다. 전적으로 개전 당시 최고책임자였던 나의 책임이다.”

1946년 도쿄에서 열렸던 도쿄국제군사재판. 도조 히데키는 최후진술에서 전쟁 책임을 모두 자기에게 돌리고 천황과는 관계가 없다고 강변한다.
도쿄 전범재판에서 도조 히데키의 최후진술 가운데 한 토막이다. 도조 히데키는 전쟁 책임을 모두 자기에게 돌리고 천황과 관계가 없다고 강변한다. 후안무치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일본인들은 지금도 그의 최후진술에 동조하는 이가 적지 않다.

패전 후 일본 지식인들은 도조 히데키를 비난했다. 도조 히데키와 그 수하들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면죄부를 받으려 했다. 그런 전범 몇몇 때문에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고 패망을 자초했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도조 히데키를 불편하고 역겨운 대상으로만 남겨 두어도 괜찮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전쟁 책임을 도조 히데키 개인으로 돌려 전쟁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진짜 전범은 따로 있는데 그들이 몽땅 뒤집어쓰고 갔다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특히 저자는 1990년대 이후 이상한 기운이 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도조 히데키를 재평가한다는 미명 아래 그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를 옹호하는 일본 우익세력들은 서세동점의 시대에 아시아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일본의 아시아 지배 욕망, 나아가 세계 지배 욕망이 또다시 꿈틀댈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2001년부터 6년 동안 총리를 지낸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후부터 이런 기운이 표면화하는데 심히 우려한다”고 했다. 저자는 35년간 수천 명을 만나 방대한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이 책을 썼다. 역사의 실체에 실증적으로 접근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일본 내 양심 인사들의 역사 반성작업에 큰 보탬을 준다.

2007년 항공자위대 최고책임자인 다모가미 도시오 항공막료장이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일제의 식민통치를 미화한 논문을 발표해 국제적 파문이 일었을 때 저자는 정면으로 다모가미를 비판했다. 비판의 핵심은 지금도 전쟁 DNA가 일본 자위대 간부들 가운데 꿈틀대고 있다는 것. 이들에게 과거의 반성 같은 것들은 한낱 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어두운 부분을 비판하는 것은, 전쟁 중 잔학행위를 했던 병사들이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것을 취재과정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를 통해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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