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민원 때문에 홍대 앞에 나갔다가…
서울 마포구청 7급 공무원 한대희의 삶은 순항 중이다. ‘시간만 가면’ 5급 승진은 떼놓은 당상으로 평가받고 있고 ‘내용보다 모양’이 중요한 보고서도 잘 쓴다. 연봉은 3500만원. 흥분하면 진다는 진리를 잘 알아 ‘진상’ 민원인도 문제없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해도 “네. 이해해요. 선생님”으로 일관한다. 취미는 TV 예능 프로그램의 ‘경규형·호동이·재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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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공무원이다’는 건조한 일상에 만족하던 7급 공무원이 홍대 인디밴드를 만나면서 진정한 즐거움을 찾는 과정을 코믹하게 담아냈다. |
소음 민원 때문에 홍대 앞에 나간 한대희는 ‘3+3=9’라는 인디밴드와 잘못 엮이면서 이들을 자신의 집 지하실로 들이게 된다. 처음에는 밤마다 쿵쾅쿵쾅 연습해대는 통에 잠도 못 자고 “애들이 뭐하는지 관심없어” 하지만 어느새 그도 음악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든다. 그러나 밴드는 팀원 탈퇴로 해체 위기에 놓인다.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소규모 콘테스트라도 나가기 위해 한대희에게 베이스 기타 자리에 “그냥 서 있기만 해 달라”고 매달린다.

밴드 멤버들과 술자리 대화에서 소외돼 “고향이 포항이냐? 포항 하면 과메기·포항제철…”하며 무안한 혼잣말을 주워 삼던 한대희가 얼굴 근육을 풀고 변하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배우 오광록의 깜짝 등장 장면은 센스 만점이다.
영화 내내 함께하는 밴드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한다. 한대희가 다락방에서 오래된 LP판을 꺼내고 핫뮤직 등의 음악잡지를 뒤적이는 모습은 음악팬의 향수를 자극할 만하다. 실제 인디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공연하는 모습도 나온다. 한대희가 “야, 쟤네 절대 못 뜨겠다. 실실 웃기나 하고. 보컬은 예쁜 애를 쓰던가” 하며 품평해대든 말든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가 말하려는 음악의 정의를 잘 보여준다.
경쟁만 있는 팍팍한 세태를 꼬집기 위해 장황한 설명조의 대사가 종종 튀어나오는 점은 아쉽다. 이중침체와 실업의 시대라든가 이 나라에 살려면 대세를 알아야 한다는 한대희의 훈수는 평면적으로 다가온다. 인디밴드의 민기가 ‘요즘 대세 88만원 세대’를 주제로 써온 가사가 단번에 퇴짜 맞았듯, 한대희의 대사 역시 현실을 담아내려다 가끔 과유불급이 된 느낌이다.
밴드 멤버들이 한대희를 가리켜 “고딩 담탱이(고등학교 담임 선생님)도 아니고 말이 많아” “아는 척만 안 하면 참 좋은 아저씨인데”라고 말하는 장면을 시나리오에도 반영했으면 어떨까.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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