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현지시간) 두 가지 충격적인 뉴스가 스페인을 강타했다. 현지 일간 엘 문도는 스페인 4위 은행 방키아에서 지난 일주일 새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유럽을 뒤흔든 뱅크런 공포가 스페인을 엄습한 것이다. 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스페인 은행 16곳과 지방정부 4곳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여기엔 스페인 1, 2위 은행도 포함됐다.
방키아는 스페인 정부가 10일 지분의 45%를 사들이며 국유화를 진행했던 은행이다. 이 과정에서 공적자금 70억∼100억유로가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방키아는 예금인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방키아가 매우 탄탄하며 정상 운영되고 있음을 믿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취재진과 만나 “지금 상황이 매우 어렵다”며 “차입 금액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위급 상황을 전했다.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방키아의 주가는 이날 한때 29%까지 폭락하다 14% 하락으로 마감했다.
스페인의 경제규모는 유럽의 재정위기 국가로 꼽혀온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를 합한 것의 두 배에 달한다. 채무 규모도 4372억유로(약 650조원)로, 그리스(776억유로·약 115조원)의 다섯 배를 넘는다. 구제금융시 훨씬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
우울한 코스피 유로존 리스크로 코스피 1800선이 붕괴된 18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딜러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시세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스페인 금융권은 2008년 부동산 시장 붕괴 이후 흔들리고 있다. 급증한 부실채권 탓이다. 현재 스페인 은행이 보유 중인 부동산 대출 규모는 약 3070억유로에 달한다. 이 중 60%가 부실자산인 것으로 알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채 금리는 연일 뛰고 있다. 이날 스페인의 10년만기 국채금리는 전날에 비해 0.07%포인트 오른 연 6.38%를 기록했다. 국채금리 6%는 위기의 마지노선으로 불려왔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부채를 갚기 어려워 재정난이 심화하기 때문이다. 금리가 7%를 넘게 되면 스페인은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스페인 정부의 무능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경제전문 스피로 수버린스트래티지의 니콜라스 스피로는 라호이 총리의 금융권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스페인 경제 전체에 대한 시장심리가 날로 악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은행은 물론 지방정부도 신뢰를 잃고 있다. 무디스는 카탈루냐, 무르시아, 안달루시아, 에스트레마두라 지역 4곳의 지방정부가 2012년도 재정적자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없다며 등급을 강등했다.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예금 인출 규모가 급증하는 추세다. AP는 그리스 언론을 인용해 지난해 벨기에의 덱시아 등 2개 은행에서 1200억유로 이상이 인출됐고 프랑스에서도 같은 기간 크레디 아그리콜과 BNP파리바 등에서 900억유로가 인출됐다고 보도했다. 빠져나간 자금은 영국과 독일, 스위스 은행에 몰려 유동성 위기 우려도 감돌고 있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