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밤 9시30분 서울 강남경찰서 한쪽에서 술에 취한 정모(39)씨가 호기롭게 호통쳤다. 마치 인사권자 인듯한 뉘앙스를 풍긴 그의 신분은 다름아닌 ‘현행범’이다. 음주상태로 서울 강남 대로변에 승용차를 세워둔 채 자다가 끌려온 처지인 데도 이상할 정도로 당당했다. 그는 “법무부 장관과 알고 지낸다. 안철수 교수 측근과도 친하고, 장인은 박근혜의 가정교사였다”고 으름장을 놨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력까지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알고 보니 명문대를 나와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에 연달아 합격한 후 현재 S법무법인에서 일하는 변호사였다. 고향에서 ‘수재’ 소리를 꽤 들었음직한 경력이다. 경찰은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 수치인 0.114%인 정씨를 힘겹게 조사한 후 역까지 바래다줬다. 그러나 그는 분이 안 풀렸는지 경찰서로 돌아와 “혼내 주겠다”고 한동안 소리를 질러댔다.
그가 돌아가고 경찰이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K법무법인 강모(44) 변호사가 바통(?)을 터치했다. 술을 마시고 외제차를 몰다 앞차를 추돌했단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취소 수치인 0.19%. 그는 금연구역인 실내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워대는 것도 모자라 “집에 데려다 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법조인들의 추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법으로 ‘먹고 사는’ 법조인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잇단 향판(鄕判) 비리와 벤츠 여검사 등 물의를 일으킨 사건의 주인공도 죄다 법조인이다. 두 변호사들의 심야 소동은 ‘뼛속까지’ 선민인 이들의 우월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이들에게 인권·사회정의를 위한 법조인의 사명이 있기나 한 걸까. 애초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한 게 욕심인 듯하다.
박현준 사회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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