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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열꽃, 활짝 피우다

입력 : 2012-03-12 21:06:57 수정 : 2012-03-12 22: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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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송진화씨 개인전 ‘열꽃’ ‘이따금 생각하고는 했지/사막의 뜨거운 모래가 내 두 팔을 덮어와도/푸른 물속의 물풀들이 내 다리를 감아와도/난 두 팔을 벌려 그들을 반겨 마주 안으리라 생각했다네/황홀함을 꿈꾸었다네/그러나 내 두 팔은 앞을 향해 있지 않네/마주 안으리라 생각하고 달려드는/푸른 물을 배반하고 위를 향해 있네/황홀 따위는 없었네//비로소 내 집에 돌아 와/몸을 누이다//온기 없고 마른 풀만 가득한/그러나 청정한 내 집//먼지 앉은 낡은 외투에/팔을 넣고/어깨를 넣고/가슴을 넣고/천천히 천천히/단추를 여미다/내 살 껍데기//진물 흐르는 발을 닦고/나무 침상에 흰 시트를/펼쳐 깔고//몸을 누이다.’ 

작품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송진화 작가. 그는 거대담론보다 사소한(연약한) 감정 덩어리로 상처를 환기시키고 치유하려 한다.
상처받기 쉽고, 연약한 인간을 여인의 몸으로 풀어내고 있는 나무조각가 송진화(50)의 작업실에 작가가 써 붙여 놓은 글귀다. 강한 척하지만 스치는 바람에도 여릴 수밖에 없는 감성이 묻어난다. 작업실이라야 아파트 관리실 한쪽에 자리 잡은 협소한 공간이지만 톱, 끌 등 최소한의 목공 장비와 나무토막들이 부산한 풍경을 이룬다. 작가는 이곳에서 매일 12시간 넘게 나 홀로 작업한다.

“나무의 살결을 드러내듯 상처 받은 몸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고, 그렇게 되리라는 강력한 주문, 자기암시의 얘기라 할 수 있지요.” 나무의 옹이 부위는 가슴이 됐다. 세상사 복장 터지는 일이 옹이가 된 것이다. 퉁퉁 부은 눈, 오그라든 손가락 발가락엔 아슬아슬한 일상의 버팀, 신산한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퉁퉁 부은 눈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작가는 시간과 이야기가 담긴 오래된 한옥과 사찰의 목재, 버려진 나무토막을 즐겨 사용한다. “나무도 사람을 닮았어요. 세파를 헤친 삶이 멋이 있듯, 나무도 나이테가 조밀하고 옹이질수록 아름답지요.” 30대까지 수묵화를 그렸던 작가는 10여년 전 불현듯 목조각에 빠져들었다.

‘따근 따근’                                                              ‘봄 날 은 간 다’
“작업에 대한 의문으로 몸부림칠 즈음, 목인박물관에서 상여를 장식하는 작은 목각인형을 봤어요. 갖고 싶은 마음에서 꼬질꼬질한 각목을 하나 주워 우물딱쭈물딱 깎았는데, 속살의 분홍과 나이테가 너무 이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지요.” 이후 그는 일상의 감성을 일기 쓰듯 나무에 새겼다. ‘빡빡머리’에 이따금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의 요즘 작품에는 강아지가 많이 등장한다. “혼자는 외로워서지요. 그러나 절대적이지 않는, 작은 위로의 존재지요. 여느 때는 애인이고, 때론 애물단지이지만 예술이 되기도 합니다. 같이 가야 하는 어떤 존재라고나 할까요.”

요즘 나무조각으로 주목받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뭘 보여주고 싶은지. “제 속에 얽혀 있는 신경 줄들이 내외부의 어떤 것들로 인해 화학변화를 일으켜 부글부글 끓지요. 그것들이 폼 나게 어떤 꼴을 갖추기도 전에 쏟아 내는 것 아닌가 싶어요. 카타르시스랄까. 배설이랄까. 그래서 작업이 즉발적이고 사소한 감정덩어리라고 할 수 있지요. 굳이 보여주고 싶은 거라면, ‘당신이 말 못하는 사소한 감정 쪼가리가 여기 있어요. 사실 우리를 흔드는 것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아주 미시적이고 사소한 것들인데요. 당신이 그렇듯이 나도 그래요’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요.”

‘힘겨움이 내 등을 밟고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4월1일까지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제목은 ‘열꽃’이다. “몸속의 이상징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현상이 열꽃이지요. 제 작업행태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한 순간을 꼽았다. “몇 년 전 중국의 차마고도에서 기차를 타고 끝 없는 평원을 하루 종일 달렸을 때의 일이에요. 청명한 하늘에 하얀 구름들이 둥실둥실 떠 가는데 마구 눈물이 쏟아졌어요. 울 이유도 없고 울고 싶지도 않았는데.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지요.” (02)725-1020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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