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강 건너는 배를 탔다. 한눈에 모쒀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할머니가 먼저 와 앉아 계신다. 할머니의 헤어스타일이 아주 특이하다. 가채를 둘둘 말아 올린 것이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왕비 같다. 복장도 남다르다. 나시족 여인들이 등 뒤에 북두칠성을 닮은 동그라미 일곱 개를 달고 다닌다면, 모쒀인 여인들은 하늘하늘 주름진 긴 스커트를 즐겨 입는다.
그런데 왜 ‘모쒀족’이 아니고 ‘모쒀인’이냐? 모쒀인은 중국의 56개 민족으로 정식 등록되진 않았지만 한족이나 다른 소수민족과는 뚜렷이 구별되어 ‘족’ 대신에 ‘인’이라 불린다. 1953년 중국은 처음으로 ‘민족 식별’ 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루구호를 중심으로 산간벽지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모쒀인들이 외지 소식에 둔감했다나. 기간 내에 민족 등록신청을 하지 못해서라는 차마 웃지 못 할 소문이 전해진다. 하지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원시 모계사회의 특징을 가진 나시족과 모쒀인을 한 분류로 두었다가, 훗날 언어와 종교, 문화와 풍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각각 분류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지금도 민족 식별 사업은 꾸준히 연구·진행 중이며, 73만여 명의 인구가 아직까지 ‘미식별 민족’으로 남아 있다.
“아줌마, 이제부터 의사소통은 어떻게 해요? 아줌마가 모쒀인 말을 좀 할 수 있어요?”
“나시족 말과 다르긴 해도 거의 알아들어요. 모쒀인과 나시족은 한 뿌리이니까요.”

마치 국경을 넘는 기분이다. 문화와 전통, 언어와 풍습이 지금까지와 다른 고장으로 간다는 생각에 괜히 설렌다. 건너편 나루터에 닿으면 트레킹 내내 옆을 지켜왔던 진사강과도 안녕이다. 이제부터는 강을 등지고 걷는다. 출발지 스토우청보다 목적지 루구호가 가까워진다.
‘라바이’ 모쒀인 마을 입구에서 오늘도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사진기 고치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라면을 후루룩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해발이 1,500미터대로 급격히 낮아지면서 어느 때보다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날은 덥지 배는 부르지, 온 몸이 나른한 게 아줌마나 나나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평온한 농촌마을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마치 읊조리는 자장가처럼. 나무그늘 아래 누워서 낮잠 한 시간만 자고가면 원이 없겠다.
이때 다리 아래 시냇가에서 포착된 나무 한 그루. “덥다, 덥다”를 연발하는 내가 엄살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푸르고 거대한 잎사귀 아래 바나나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렇담 여기는 열대기후대란 말인가? 나무의 정체를 확인하자 체감온도가 급상승한다. 더 헉헉대며 30분쯤 걸었다. 아름드리 나무가 나타나자 아줌마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늘 아래 널브러졌다. 아줌마의 꼴이 말이 아니다. 며칠 감지 않은 머리카락이 꾀죄죄하고 아이가 옷 위에 턱받이를 한 것처럼 가슴 앞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내 꼴도 우습기는 마찬가지.
“힘들죠?” 아줌마가 묻는다.
“살~알~짝, 약간~요.”
나는 처음으로 본심을 토로한다. 그동안 아줌마가 “힘들지 않냐?” 물을 때면 마음 약해질까 결심이 흐트러질까 “아주 좋아요.”라고 했다. 하지만 나도 더이상 나를 속이지 못하겠다. 아줌마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허허허 웃는다. 나도 덩달아 실실 쪼개며 물을 마신다. 옆에서 이를 유심히 바라보던 모쒀인 할머니가 아줌마에게 다가와 뭐라 뭐라 하신다. ‘이 나무그늘에 외지인이 함부로 앉으면 부정이라도 타나?’ 덜컥 겁이 나서 나는 벌떡 일어섰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내게 아줌마가 말했다.
“우리가 힘들어 보인다고, 할머니 집에 들어와서 차 마시고 쉬었다 가래요.”
어머, 이게 웬 횡재. 할머니가 갑자기 마음을 바꿀 리도 없는데 나는 후다닥 가방을 챙겨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닭들이 한가로이 모이를 쪼고 있는 넓은 마당 한켠에 할아버지와 서너 살쯤 된 어린 손자가 미니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다. 며느리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부엌에서 따뜻한 차와 해바라기씨 한 접시가 담긴 쟁반을 내온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앉아있는 부엌 차양 밑 미니테이블에 아줌마와 나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이 고마운 사람들이게 나는 뭘 해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한다. 별것 아니지만 즉석사진을 찍어 선물하면 기념이 될 것 같다.
사진을 찍어드리겠다는 내 말에 할아버지는 얼른 방에서 모자를 챙겨 나오신다. 할머니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여민다. 이집 며느리는 내게 잠시만 기다리라며 대문을 쏜살같이 나가더니 남편과 큰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아쉽게도 어린 막내는 내가 낯설고 무서운지 뒷걸음질 치며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 엄마와 아빠까지 나서서 살살 달래며 꼬셔보지만 소용없다. 전체 가족사진을 찍어드리면 참 좋겠구만. 내가 더 아쉽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한 컷, 며느리 부부 한 컷, 큰아들 한 컷, 그리고 막내손자를 제외한 가족사진을 찍어 드렸더니 다들 아이처럼 좋아한다. 행복해 하는 모쒀인 가족을 보니까 내가 더 고맙다.
그만 가봐야겠다는 아줌마와 내게 할머니는 해바라기씨를 한 주먹씩 건넨다. 온 가족이 대문 밖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한다. 잠시였지만 모쒀인 가족의 인정에 마음이 훈훈해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는다.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오르막길을 오른다. 의기충천한 마음과는 달리, 좀처럼 속력이 나질 않는다. 한번 풀린 다리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지 마음대로 움직였다. 눈앞에 펼쳐진 언덕, 보기에는 아주 야트막하지만 점점 해발이 높아진다. 1,500미터에서 1,800미터, 1,800미터에서 2,000미터로 고도가 높아지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발걸음이 무거울 뿐 아니라 감각도 무뎌진다. 자꾸 다리가 풀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에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기 일쑤다. 그때마다 나의 무의식적인 반사행동이 이어진다. 손바닥으로 얼른 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선다. 이 무의식적인 행동에 가슴이 뜨겁다. 자연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 걸음마를 떼던 그 순간부터 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넘어질 때면 땅을 짚고 벌떡 일어섰던 것처럼, 다시는 세상과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거운 실패와 어려움 속에서도 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따스하게 품은 저 대자연이 그토록 내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 그래서 이 길을 걷는 지금 숱하게 넘어지고 까지고 깨지면서도 나는 또 숱하게 감동한다.
여행작가 고승희(blog.naver.com/koara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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