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사막의 오아시스가 부러우랴! 긴 가뭄 끝에 만난 단비가 부러우랴! 숙소의 태양열 온수기가 고마워 죽겠다. 온종일 햇볕이 뜨겁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는데 지금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틀 만에 하는 샤워가 감격스러워서 ‘하아!’ 즐거운 비명이 흘러나온다. 못 부르는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펑펑 나오는 뜨거운 물을 온몸에 맞고 섰다. 쌓인 피로가 싹 풀리는 거 같다. 찜질하듯 뜨거운 물을 오래 맞고 싶지만 한정된 양을 생각해서 여기까지.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이런, 수건 챙기는 걸 깜빡했다. 내가 미쳐! 좀 찝찝하지만 아쉬운 대로 땀에 전 메리야스로 몸을 닦았다. 다시 땀 냄새를 풍기며 밖으로 나왔다. 그새 날이 많이 어두워졌다.
버젓한 간판 달린 숙소가 있는 펑커(奉科)는 제법 큰 마을이다. 드넓은 계단식 밭을 중심으로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여러 개의 촌락을 이뤘다. 보이지는 않지만 이 어딘가에 리장을 오가는 작은 도로까지 나 있다. 내가 리장에서 스토우청까지 타고 온 것처럼, 여기도 6인용 화물트럭이 정규노선 버스 역할을 한다. 하루 한 차례 리장과 펑커를 오간다. 2층으로 된 숙소 옆에는 아주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주로 리장에서 석유나 생필품들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가 이용한다. 이 숙소의 단골도 화물차 기사들이란다.
마침 젊은 나시족 복무원 아가씨가 홀로 숙소를 지키고 있기에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줌마와 나, 복무원 아가씨가 부엌에 모여앉아 저녁을 준비한다. 뜨끈한 샤브샤브가 오늘의 메뉴다. 커다란 전기냄비에 맑은 고깃국을 듬뿍 담았다. 그리고 불린 당면, 두부, 배추, 상추를 접시에 담고, 흰쌀밥이 가득 담긴 전기밥솥은 상 위에 통째로 올려놓았다.
복무원 아가씨가 보통어를 유창하게 잘 해서 나와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다. 간만에 수다를 떠니 입도 목욕을 한 것처럼 상쾌하다. 젊은 아가씨가 친절하고 싹싹해서 내가 한사코 사양해도 자꾸 내 그릇에 고기를 골라 올려준다. 사실 나는 야채가 더 좋은데. 뜨거운 두부랑 잘 익은 배추는 매콤한 양념장에 찍어먹으면 환상이다. 국물이 적당히 밴 쫄깃한 당면도 역시 기가 막힌다. 온종일 걸어서 그런지 입맛이 날로 좋아지고 있다. 냄비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여자 셋이 배를 두드리며 잘 먹었다.
침대에 엎드려 일기를 쓰는데 자꾸 발꿈치가 아려서 봤더니 물집이 잡혀 있다. 1년간 배낭여행 할 때도 단 한 번 안 잡혔던 물집이 글쎄 두 개나 생긴 것이다. 영광의 상처를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아줌마가 세수를 하고 방에 들어온다. 이를 놓칠세라 나는 아줌마에게 자랑을 한다.
“어우, 이 큰 물집 좀 봐요. 온종일 열심히 걷긴 걸었나 봐요.”
“어머, 내일 고생하지 않으려 빨리 터뜨려야 해요. 가서 바늘 빌려올게요.”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복무원 아가씨까지 와서 아줌마와 번갈아 내 발을 살핀다. 옆방에 든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유심히 쳐다본다. 그러더니 얼룩무늬 군복점퍼를 입은 그 아저씨는 뻐끔뻐끔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우리 방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참견을 한다.
“요걸로 콕, 콕, 집어주면 되겠어요. 발을 이리 줘 봐요, 어서.”
아저씨는 나를 재촉하면서 자기 허리춤에 매달아두었던 손톱깎이를 빼들고 달랑달랑 흔들었다.
“아, 아, 아니에요. 그냥 놔두면 알아서 터지겠죠. 괜찮아요.”
“괜찮기는. 이깟 게 뭐 무섭다고 호들갑이요? 내가 안 아프게 뜯어줄게 걱정마요.”
누가 아플까봐 겁내나. 아저씨는 남의 속도 모르고. 허리춤에 매달고 다녔던 그 손톱깎이를 언제 닦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러는 거지. 눈치 빠른 복무원 아가씨가 내 머뭇거리는 표정을 알아보고 아저씨를 데리고 나간다. 방을 빠져나가는 아저씨는 직접 터뜨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얼굴이다. 바늘이 없다며 아가씨가 새끼 손톱만한 나무가시를 술이 반쯤 담긴 술잔에 담가 가져다 주었다.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다음날. 아침을 먹으려고 주방에 들어갔다가 아저씨를 다시 만난다.
“발은 괜찮아요?”
“네,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보아하니 여행객 같은데, 이 깊은 산골에는 뭐 볼 게 있다고 왔수?”
“루구호까지 걸어서 가는 길에요.”
만터우를 뜯어 입에 넣던 아저씨 표정이 ‘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하는 깜짝 놀란 얼굴이다. 모든 동작을 멈추고 아저씨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더니 또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아이 구슬리듯 나를 타이른다. 리장에 가면 루구호 가는 고속버스 얼마든지 있다, 여자 단 둘이 산길을 걷는 건 위험하다,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섭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흉악한 사람도 많다 등등. 어느 한 마디 아저씨 말이 틀린 데가 없어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이 걸음을 멈출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다. 이 여행은 내게 있어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여행, 그이상의 의미가 있다. 지금 내 어깨에 짊어진 10킬로그램의 배낭보다 더 무거운, 납덩이를 가슴에 얹어놓은 듯한 심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을 향해 다시 걸어 나오는 용기 있는 행보이고 도전이었다. 첫걸음을 떼기 전까지 막연한 두려움이 어렵게 낸 용기를 꾹꾹 짓눌렀다. 막상 걸음을 떼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용기가 차올랐다. 이제야 비로소 기꺼운 마음이 되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겠다는 배짱이 생겼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의지 또한 굳건해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점점 걷기의 마력에 빠져들고 있으니. 이 좋은 걸 어떻게 관둘 수 있겠나. 그리고 벌써 여정의 3분의 1 넘게 걸어왔는데!
아저씨 말마따나 ‘겁을 상실한 두 여자’는 아침 8시 다시 산길에 섰다. 펑커에서 한 시간가량 산길을 걸어 나오자 검은 아스팔트 신작로가 펼쳐진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탄탄대로다.
“저기 도로 옆에서 좀 쉬어가요. 나는 집에 전화 좀 하고 곧 따라 갈게요.”
아줌마가 전화를 하는 사이. 나는 바짝 마른 높은 밭두렁에 서서 걷기여행에서 처음 만난 아스팔트 도로를 기념 촬영하는데…“어어어~ 어~ 으악!” 바닥이 미끄러워서 그만 밭으로 데구루루 굴러 떨어졌다. 그 순간에도 카메라만큼은 지키려고 필사의 노력을 했건만.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는다. 렌즈와 몸체를 연결하는 고리가 넘어질 때 충격으로 똑 부러진 것이다.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루구호’에는 아직 반도 못 왔건만. 이후에도 그림같이 아름다운 리장, 따리고성, 시솽반나 일정이 줄줄이 기다리는데. 이번 여행은 아예 사진 찍기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 이를 어쩌나? 일단 카메라부터 고치러 다시 쿤밍에 가야 하나? 그나저나 쿤밍에는 삼성카메라 수리점이 있을까? 렌즈를 새로 사서 끼우면 될 것 같은데. 아니, 임시방편이지만 본드로 연결고리를 붙이면 될 것도 같은데.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창 고민하는데 아줌마가 다가왔다.
“아줌마 이 도로가 리장까지 연결되는 거 맞죠?”
“네, 하루 한 댄가, 두 댄가 리장 가는 차가 있다고 들었어요.”
“이 근처에도 카메라 수리할 만한 곳이 있나요?”
“글쎄요. 두 시간쯤 더 걸으면 마을이 나오긴 하는데…”
“그럼 일단 그 마을로 가요.”
오랜만에 평지를 걷는데 발걸음은 산길을 걸을 때보다 무겁다. 마을에서 카메라를 고칠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마을에서 수리할 수 없다면 차를 타고 리장으로 갈 생각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있지만 사진으로 기념할 수 없다는 건 상상하고 싶지 않다. 트래킹 시작하고 처음으로 진사강이 바로 내 옆에서 흐른다. 강렬한 햇살을 받고 본래 누런 강이 은빛 찬란하게 빛난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찍을 수 없다는 게 너무너무 아쉽다.
마을에 도착해서 식료품 가게로 들어갔다. 주인아저씨 도움으로 마을의 전자제품 수리공과 수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안타깝게 신호만 가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주인아저씨가 무슨 일로 수리공을 찾느냐기에 카메라를 보여줬더니 본인이 고쳐 봐도 되겠느냐 묻는다. 여행 오기 며칠 전 새로 구입한 카메라지만 이것이 운명이라면…마음을 비우고 아저씨에게 말했다.
“더 망가져도 아저씨를 원망하진 않을 게요.”
방에서 강력접착제를 들고 나온 아저씨를 믿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아저씨의 ‘강력한 한방’으로 소생한 카메라. ‘오, 하늘도 내 여행을 응원하고 있구나!’ 너무 기뻐서 아이처럼 껑충껑충 뛰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줌마도 나만큼이나 좋아한다. 고쳐준 아저씨는 “뭐, 이깟 걸 가지고.” 라고 하셨지만 나보다 더 뿌듯한 표정이다. 부디 카메라가 이 상태로 50일간의 여정을 견뎌주기를.
나시족 고장과 이별할 시간이다. 아저씨를 따라 아줌마와 나는 배를 타러 간다. 기술 좋은 아저씨는 가게 외에 배도 한 척 가진 선주다. 진사강을 건너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폭이 2,30미터쯤 되는 강을 건너면 펑커(奉科)에서 라바이(拉伯)로 마을 이름이 바뀐다.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니라 사는 민족도 달라진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동방의 여인국’ 모쒀인(摩梭人) 마을이 시작된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지금도 모계사회의 전통이 또렷이 남아 있다는 모쒀인. 남자는 장가가지 않고, 여자는 시집가지 않는다는 독특한 ‘주혼(走婚)’ 풍습을 가진 모쒀인 마을은 과연 어떤 모습이려나.
여행작가 고승희(blog.naver.com/koara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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