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지목되고 있는 세종대왕. 그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놀라움과 존경심을 갖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역사상 가장 자랑스런 업적인 한글 창제가 완성된 1443년은 세종대왕이 이미 실명한 이후였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의학자들은 그의 실명의 원인을 당뇨병성 망막증이나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한 후유증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눈질환의 원인은 종합적이다. 내부적인 요인은 오장육부와 근골격계의 불균형이며 외부적인 요인은 스트레스와 잘못된 생활습관 등이다. 오장육부와 근골격계의 불균형은 면역력의 약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는 선천적인 체질과 후천적인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다.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서구적인 식습관과 운동부족, 지나친 책읽기나 TV 시청,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으로 인한 잘못된 자세 등은 눈병이 증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문헌을 살펴보면 세종의 생활 역시 눈 질환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세종 7년에 중국 의원 하양이 세종의 병을 진찰한 후 “전하의 병환은 상부는 성하고 하부는 허한 것으로 이는 정신적으로 과로한 탓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세종실록>) 하루 3~4시간만 자고 윤대, 경연, 서무를 계속했다는 기록도 있다. 셋째 왕자였던 세종이 위의 두 형들을 제치고 일찍 보위에 오른 탓에 과도한 스트레스 속에서 항상 격무에 시달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세종은 운동을 싫어하고 육류 위주의 식사를 즐겼다. 1418년 즉위한 세종에게 아버지 태종은 “주상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지만 몸이 비중하지 않소? 마땅히 때때로 나와 놀면서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主上不喜游田 然肌膚肥重 須當以時出遊節宣)”라고 충고했다.(<세종실록>) 태종은 “주상이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하는데…”라고 걱정하는 유언까지 남겼다.
또한 세종은 못 말리는 책벌레였다.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해 늘 지나치게 책을 읽었다. 몹시 추울 때나 더울 때도 밤새 글을 읽었으며, 몸이 아파도 책을 읽었다. 보다 못한 태종이 환관을 시켜 책을 다 거두어 가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거의 모든 책을 100번씩 반복해서 읽었고, 딱 한 가지 책만 30번을 읽었으며, 어떤 책은 11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연려실기술>)
눈 질환 외에도 여러 가지 질환을 앓고 있던 그는 안타깝게도 54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그의 대표적인 병명은 풍질, 풍습, 안질, 소갈, 임질, 종기 등이었다. 그가 정사를 돌보는 만큼 자기 몸을 돌보는 데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백성의 문맹을 깨치기 위해 자신의 눈을 희생한 세종의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하미경(하성한의원 원장, 한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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