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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착취를 넘어…' 벼랑끝에 몰린 이주노동자들

입력 : 2011-12-17 13:26:49 수정 : 2011-12-17 13: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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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UN)은 1990년 12월18일 총회에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이주노동자권리보호협약)을 채택했다. 이주노동자권리보호협약은 사각지대에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마련됐다.

UN에서 이 협약이 채택된지 20여년이 흘렀다. 그러나 국내 이주노동자의 노동환경과 인권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최근 이주노동자들이 과거에나 볼 수 있었던 노예노동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정부의 무분별한 단속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직·간접적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 근로계약서상 사업장 아닌 곳에 이리저리 팔려 다녀…

지난 3월 한국에 입국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N씨와 K씨는 3일간의 연수를 마친 후 8월까지 강원 양구지역 세곳의 농장에서 일했다.

이들 농장은 근로계약서상 사업장이 아니었고 N씨와 K씨는 근로계약서상 명시된 사업주의 얼굴을 단 한번도 보지 못한채 일했다.

이들이 다른 농장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이랬다. 브로커 안모씨와 파견 사업주가 강압과 협박 등의 방법으로 자신들이 지정한 업체에서 강제로 일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안씨와 파견 사업주들은 고용노동부 직원이 실제 사업장을 방문하기로 한 날에만 N씨와 K씨를 근로계약서상의 사업장으로 보내 법망을 피해왔다.

이주 노동자들은 여러 농장을 옮겨 다니며 상시적인 임금체불,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현재 강원 양구 일대에서 2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파견형태로 여러 농장을 전전하며 고통 받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37개 단체로 구성된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지난 10월 강원 양구 지역에서 2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고용허가제 농업노동자 비자(E-9-4)로 입국한 노동자들이 브로커에 의해 불법파견 되고 있다"면서 "여러 농장을 전전하며 휴식과 휴일을 박탈당한채 강제근로를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같은 불법파견은 고용허가제와 근로기준법 등 실정법에 위반되는 고용형태"라며 "관계 부처의 조직적 개입이나 묵시적 승인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 정부의 토끼몰이식 단속…30여명 직·간접적 사망

지난해 10월29일 오전 10시께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사업장에 서울출입국관리소의 단속으로 베트남 미등록 이주노동자 T(35)씨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단속반원들은 4m 높이의 2층 건물을 토끼몰이 하듯 포위한 후 영장제시나 사전고지도 없이 동시 다발적으로 건물에 진입했다. 막다른 곳에 몰린 T씨는 결국 창 밖으로 투신했고 병원으로 이송된 지 일주일도 안 돼 사망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측은 신체적 접촉이 없었고 스스로 투신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29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단속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했다. 또 2003년부터 올해 8월까지 18만50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정부의 단속으로 강제추방 됐다.

▲ 이주노동자 보호시설…폭행 등에 노출

지난해 7월9일 오후 8시30분께 경기 수원시의 출입국관리소에서 중국인 윤모(48)씨가 출입국 직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외국인보호실에는 윤씨를 포함해 단속된 중국인 8명이 조사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이때 출입국의 한 직원이 외국인보호실로 들어와 윤씨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출입국관리소측은 윤씨 등이 단속 도중 저항을 했고 그 과정에서 출입국 직원도 다친 사람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공개한 '2009년 보호외국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단속반원에게 붙잡혔을 때 구타를 당했냐'는 질문에 남성 응답자 21.1%가 구타를 당했다고 답했다.

'구타를 어떤 방법으로 당했는가'란 질문에는 남성 응답자의 66.7%가 손과 발로 맞았다고 응답했고 41.7%는 여러 명에 둘러싸여 맞았다고 응답했다. 또 응답자의 25.0%는 장비로 맞은 것으로 드러났다.

'붙잡혔을 때 단속반원이 폭언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는가'란 질문에 남성 응답자의 43.8%, 여성 응답자의 32.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미 단속이 돼 미등록 이주자의 신병이 확보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구타와 폭언은 형법상 폭행 및 가혹행위죄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며 "단속과정에서 과도한 폭력행위 및 인권침해를 근절할 수 있는 재발방지대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주노동자 정책 편의·기능주의 문제"…제도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권리보호협약이 등장한지 20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의 편의·기능주의적 정책과 단속의 실적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기돈 한국이주인권센터 국장은 "단속 중 이주노동자의 사망사건이 꾸준히 발생하는 이유는 실적위주의 편법적 단속 때문"이라며 "유일하게 영장주의가 관철되지 않는 출입국 관리소에 적법 절차와 영장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출입국 관리소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밤중의 기습 단속, 관할을 넘어선 실적위주의 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그러나 지금도 관할지역을 넘어서 실적을 맞추기 위한 단속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김 국장은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한마디로 편의·기능주의"라며 "고용허가제도 결국 저임금으로 편리하게 외국인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의 편의주의적 정책은 결국 이주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주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며 "강원 양구지역 노예노동 사건도 사업자가 마음대로 노동자를 부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중인 외국인은 지난 9월말 기준 141만149명이다. 전체 인구의 3%에 육박한다.

진정한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벼랑끝에 몰린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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