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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 때까지 참가 … 죽기 전 해결됐으면”

입력 : 2011-12-07 23:45:30 수정 : 2011-12-07 23: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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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 “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계속 시위에 나가야지. 우리가 없어지면, 이 문제도 없던 일이 될지도 모르잖아….”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3·사진) 할머니는 몇 번이나 말을 잇지 못한 채 흐르는 눈물만을 계속 훔쳤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강 할머니의 상처는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나눔의 집’에서 강 할머니를 만났다.

강 할머니의 고향은 경북 상주다. 1943년, 15살이던 어느 날 집에 순사가 들이닥쳤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간 곳은 중국 목단강에 있던 일본군 위안소였다.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기억을 가슴에 안고 살게 됐다. “나라가 없어서 그랬어.” 당시 이야기를 하던 강 할머니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전쟁이 끝날 무렵 장티푸스를 심하게 앓아 부대 밖으로 쫓겨났고, 불에 태워지려는 순간 독립군의 도움으로 구출됐다. 광복 이후에도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고 중국에서 가정을 꾸렸지만 남편이 일찍 죽어 중국 길림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대사관을 찾았다가 2000년 고국 땅을 다시 밟게 됐다.

한국에 와 나눔의 집에서 지내온 강 할머니는 매주 수요시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수요시위에 참석하려면 오전 10시에 출발해야 한다. 다시 돌아오면 오후 4시가 넘는다. 고령의 나이에 힘도 들지만 강 할머니는 이 문제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간다. ‘역사의 산증인’이라는 책임감 때문이다.

강 할머니는 “한국 정부에서 나서지 않으니 섭섭하다”며 “일본이 사과해도 분은 안 풀리겠지만 우리에겐 이미 벌어진 일이고, 다시는 우리 국민을 무시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사과받으면 후세들을 위해 용서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김유나·조성호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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