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도가니’가 개봉 5일 만에 전국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 성공하자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사건에 대한 재수사 여부도 화두로 떠올랐다.
공지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도가니’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광주인화학교 교장과 교직원들에 의해 자행된 청각 장애아동 성폭력 사건을 그리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한 청각 장애 특수학교인 인화학교 교직원 8명이 2000년부터 7~22세 장애아들을 무차별적으로 성폭행 및 성추행한 사건으로, 장기간 피해를 당한 학생만 12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면수심 교사들은 말 못하는 아이들에게 심각한 성폭력을 가한 뒤 단돈 몇 천원으로 입막음했다.
이 사건은 보다 못한 한 교직원이 2005년 6월 광주의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해 11월 MBC ‘PD수첩’의 취재로 사건은 더욱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당시 18세였던 여학생은 12세 때부터 무려 6년간이나 정기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청각 장애 2급, 어머니는 정신 지체 1급으로 딸이 유린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인권위에 의해 고발당한 가해자 6명 중 4명만이 집행유예나 징역 1~2년의 적은 형량만을 선고 받았다. 성폭력 가해자인 교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이 구형됐지만 항소심에서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구형 받았다. 행정실장 역시 항소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교장은 지난 해 암으로 사망했고, 그 외 교직원들은 버젓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가능했던 것은 재단과 학교, 경찰 및 법조계 공직자들의 비리가 마치 그물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네티즌들은 뒤늦게나마 온라인 청원과 서명운동, SNS 등을 통해 당국에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지만, 사실상 재수사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판결이 내려진 사건에 대해 다시 수사할 수 없는 ‘일사부재리 원칙’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새로운 피해자가 나타났다는 등 기존 처벌 받은 범죄와의 '기본적 사실의 동일성'이 없는 별개의 범죄가 발견되지 않는 한 가해자들을 다시 불러 재수사할 수 없다.
영화로 인해 은폐됐던 사건이 재조명되자,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해당관청은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광주시청과 광산구청에는 지난 며칠간 전국에서 걸려온 항의전화로 빗발쳤다.
광산구청 측은 인화학교를 운영중인 우석 법인에 오는 10월7일까지 이사진을 교체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는가 하면, 장애인 시설 등 인권 사각지대를 담당할 인권전담 직원을 채용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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