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이역에서 시집온 새댁들도
지금 당장의 삶이 힘든 사람들도
보름달에 소원 빌며 행복하고 넉넉한 추석을 보냈으면 좋겠다

사람살이에 있어서 어찌 좋은 일만 있을까마는 그래도 잦은 기상 이변과 뛰는 물가에 마음까지 뒤숭숭했던 것이 요즘의 형편이었다. 하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 했으니 시름 속에서 맞는 추석 명절이 그래도 좋기만 하다. 살림형편이 넉넉하다면야 욕심껏 장만해서는 살가운 마음으로 이웃을 살피고,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여 앉아 지난날을 추억하거나, 조상들께 차례를 지내면 좋겠지만 굳이 차례 상이 걸지 않아도 좋다. 조촐하게 장만한 음식을 가운데 두고 보고 싶었던 얼굴을 마주하며 조상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추석은 넉넉하고 풍요롭다.
추석은 그래서 좋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이웃끼리, 지인끼리 정을 나누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은 추석빔에 내내 설레고, 고향의 부모들은 객지로 나가 사는 자식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 더 좋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지 마라 말려도 한사코 가족을 찾아 떠나는 것이 우리 추석명절이 갖는 미풍양속이자 미덕이다. 비록 몸은 고단할지언정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서는 고향의 언어로 가족의 결속을 다지고 내일의 안녕을 다짐한다.
그렇게, 천지인, 땅과 하늘과 사람이 함께하는 명절이 바로 우리의 추석인 것이다. 오곡백과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 이웃과 정을 나누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것. 그 마음에 어찌 삿된 것이 끼어들 수 있을까. 그 정성에 무성하게 자란 풀들로 반월을 잃은 봉분들은 다시 제 모양을 찾아서는 정겨운 풍경으로 자리하니, 저리 잊지 않고 돌보는 사람들의 손길과 마음이 고맙고 애틋할 뿐이다.
정말 그래서 그런지 모처럼 보름달 같은 웃음들이 사방에 걸렸다. 그 웃음들이 푸지고 환하다. 하긴 푸진 것이 어디 그 웃음뿐이랴. 웃음이 푸지듯 햇물도 푸지고 인정도 푸지다. 해마다 이맘때면 택배회사들은 몰려드는 배달 상품들로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무어 그리 나눌 것이 많은지, 층층이 쌓이고 쌓인 그 선물상자들은 내 것이 아니어도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는다면 형편과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골라 선물을 마련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러지 못했다. 기껏해야 달걀꾸러미나 설탕, 조미료 세트와 과일바구니가 전부였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머니는 가까운 곳에 사는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손수 짠 참기름을 보내거나 근으로 끊은 고기를 신문에 싸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웃에게는 방금 쪄낸 송편을 돌렸다.
그렇게 심부름을 하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어떤 이는 종합선물세트를 보내고 어떤 이는 빨갛게 익은 사과 몇 알을 담아 주시곤 했다. 이웃 역시 송편 담아간 그릇에 자신들이 빚은 송편을 얹어주거나 막 담근 김치를 덜어 주셨다. 그렇게 몇 집 돌다 보면 갖가지 모양의 송편이 모이는데, 그 송편을 보며 서로 자신들의 송편이 예쁘다며 웃음 섞인 말로 우기기도 했다.
어쨌거나 지금 생각해 보면 많고 많은 선물들 가운데 그 선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비싸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고 정성이 담겨 오히려 더 고맙다.
헌데 웬일인지 그 시절이 더 아름답고 정겹다. 모든 것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소박하고도 번거로운 기억들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아무튼 다들 소원 하나쯤은 있을 터. 그러니 멀리 이역에서 시집온 새댁들도, 지금 당장의 삶이 힘든 사람들도, 가족들과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도, 그 보름달에 소원 빌며 행복하고 넉넉한 추석을 보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어릴 때 그러했던 것처럼 금빛으로 빛나는 보름달에 꽁꽁 감춰 두었던 소원을 빌어보련다.

▲1960년 목포 출생 ▲광주문화방송 성우를 거쳐 1999년 신춘문예로 등단 ▲2001년 삼성문학상 수상 ▲소설집 ‘만두 빚는 여자’, 장편소설 ‘소수의 사랑’ ‘바람의 노래’ ‘바람남자 나무여자’ 등
그림=화가 조몽룡
▲대구예술대 교수 ▲풍경 인물 정물을 통해 인생의 사유와 관조를 담아내고 있다. 맑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그림, 우수에 찬 화면이면서도 아름다운 상념을 일으키는 그림은 서정적 미감을 깊게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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