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병 치유 대대적 수술 나서야 간 나오토(菅直人) 현 총리는 30일 물러나고 새 총리가 등장한다. 2006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물러난 이후 불과 5년 만에 6번째 총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같이 2차 대전 패전을 겪었던 독일이 종전 후 지금까지 총리가 8번밖에 바뀌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경이적인 교체 빈도다.
이렇게 가다가는 1년마다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가 두 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보다 더 유명한 새 법칙, 즉 일본에선 1년마다 총리가 교체된다는 ‘일(日)의 법칙’이 만들어질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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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도쿄특파원 |
일본의 잦은 총리 교체는 일본 사회가 ‘중병’에 걸렸다는 증거이다. 최근 수년간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돌이켜보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일본 사회는 젊은이는 줄고 노인은 점점 더 늘어나는 ‘소자고령화(少子高齡化)’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노동인구 부족과 소비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재정지출을 통한 전통적 경기부양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경기부양 효과는 반짝 효과에 그치고 재정적자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기 침체와 재정 악화라는 더블 위기에 빠진 정부는 ‘무능한 정권’으로 낙인 찍혀 인기가 떨어진다. 결국 여당이 중의원에서 이겨 집권하더라도 이어지는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중의원은 여당, 참의원은 야당이 주도하는 일명 ‘네지레국회(뒤틀린 국회)’가 탄생한다.
입지가 좁아진 정권은 국가를 위해선 사회보장제도의 축소와 과감한 증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앞의 선거를 의식해 이런 정책 도입을 주저하게 된다. 야당은 곧 자신들이 집권할 것이라는 생각에 좀처럼 정권의 정책운영에 협조하지 않는다.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좀처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정부가 적시에 정책을 수립해 집행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국민의 신뢰가 더욱 떨어진다.
이 같은 악순환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아베 총리→후쿠다 총리→아소 총리로 이어진 자민당 정권이나 하토야마 총리→간 총리로 연결된 민주당 정권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현상이다. 자민당 정권 시절 민주당이 참의원을 장악해 괴롭혔던 것을 지금은 자민당이 참의원을 이용해 민주당 정권에 복수를 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모습은 의사(정치)가 중병에 걸린 환자(국가경제)를 놓고 보호자(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해 수술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퇴원도 시키지 못하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사실상 차기 총리를 뽑는 민주당의 당대표 경선(29일)에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외상과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 경제산업상,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상, 마부치 스미오(馬淵澄夫) 전 국토교통상, 가노 미치히코(鹿野道彦) 농림수산상 등 5명이 출마했다. 새로운 리더십을 자처하는 이들 후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분명하다. 일본 국민들에게 ‘일본병’에서 탈출하기 위해 뼈를 깎는 개혁을 설득해야 한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모르핀 주사(포퓰리즘 정책)를 맞으며 임종을 기다리기보다는 고통스럽지만 수술을 통해 재활하자고 호소해야 한다.
일본의 총리가 지금처럼 자주 바뀐 적이 예전에도 있었다. 대공황이 일본 사회를 뒤흔든 1930년대 총리가 10명이나 갈렸다. 그런 정치적 불안은 결국 국민정서를 급격히 우경화시켜 1940년대 군부와 극우세력에게 2차대전으로 가는 길목을 열어줬다. 최근 도쿄 오다이바의 후지TV 앞에서 대규모 반한류 시위가 일어난 것을 보면 ‘역사의 과오’가 반복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의 새 총리가 국민들에게 뼈를 깎는 개혁과 고통 분담을 설득할 만한 지도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일본 국민들이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포퓰리즘의 늪에서 탈출할 각오가 돼 있는지를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동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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