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추픽추는 페루 남부 쿠스코 서북부 지역의 해발 약 2천200m에 위치한 도시로 잉카 공용어였던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유적지는 미국 예일대 고고학자인 하이럼 빙엄이 1911년 잉카의 마지막 요새인 '빌카밤바'를 찾다 우연히 발견하면서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됐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빙엄을 첫 발견자의 위치에서 끌어내리고 있다.
페루 정부는 내달 마추픽추 현지에서 발굴 10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행사를 벌일 계획이지만 마추픽추가 이미 세상에 알려진 지 100년을 훌쩍 넘었다는 주장탓에 기념행사가 갖는 의미는 다소 퇴색한 듯한 모습이다.
27일 EFE통신에 따르면 빙엄이 첫 발굴자라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주장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페루 역사학자인 마리아나 모울드는 당시 '마추픽추와 미국 인류학 사회의 윤리강령'이라는 책에서 마추픽추가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며 19세기 독일인 탐험가 아우구스트 베른스가 이 곳에서 유물을 약탈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도를 실었다.
모울드는 책에서 베른스가 이전에 마추픽추에 갔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를 빙엄이 갖고 있었으며 영국의 역사학자인 클레먼츠 마컴도 이전에 마추픽추의 위치를 기록한 지도를 갖고 있었다며 빙엄을 첫 발굴자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빙엄은 1911년과 1912년, 1915년 세차례에 걸쳐 마추픽추를 탐험했으나 베른스는 그 이전인 1880년대 후반 마추픽추를 찾아 목재와 탄광회사를 설립해 페루 정부의 묵인 하에 유물을 약탈해 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울드의 연구 외에도 빙엄이 첫 발견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곳곳에서 나온다.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마추픽추의 토지 소유주인 아구스틴 리사라가가 남긴 기록으로 마추픽추에는 그가 현지를 찾았던 날짜(1902년 7월 14일)가 벽에 또렷이 남겨져 있다.
또 19세기에 작성된 여러 지도에는 마추픽추의 위치가 표기돼 있으며, 멀게는 1565년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피게로아라는 스페인 사람의 저서에 마추픽추가 '피추(Pijchu)'로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이 여러 역사학적 증거를 토대로 한 연구와 주장이 쏟아져 나오면서 빙엄은 사실상 첫 발굴자의 위치에서 멀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마추픽추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이라는 점을 놓고는 이견이 많지 않다.
빙엄이 마추픽추에서 미국으로 가져간 수천점의 유물은 이후 소유권을 놓고 공방을 벌이게 되지만 그를 시작으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마추픽추도 유적으로서의 가치와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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