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美 답사중 차사고, 먼저 간 제자에 미안함이…
작년 12월 美서 승소 하고도“할말 없다” 애통함 드러내 얼굴과 목, 어깨 윗부분을 제외한 모든 신경이 마비돼 움직일 수조차 없다면….
선뜻 답하기 힘든 질문이지만, 십중팔구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지도 모른다. 서울대 이상묵(49·사진·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다르다.
2006년 7월 이 교수는 미 캘리포니아 카리조플레인 국립공원에서 제자들과 야외 지질연구 도중 차량이 뒤집히면서 죽음의 문턱을 오갔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전신마비’라는 장애가 그의 삶을 옥죘다.
그러나 그의 사전에는 ‘좌절’이라는 말 자체가 없는 듯했다. 오히려 보란 듯이 일어나 휠체어에 의지한 채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강의와 연구에 매진하는 그를 사람들은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부른다.
그런 그가 미국의 사고차량 제조·개조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278만달러(30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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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교수. |
“안전벨트를 했지만 차량 지붕이 무너져 피해를 입은 만큼 포드와 차량을 야외 조사용으로 개조한 퀴글리모터에 잘못이 있다”는 게 소송 배경이다.
이 교수 측은 포드에 손해배상액으로 치료비 124만달러, 향후 예상치료비 120만달러, 정신적 피해 보상 등 모두 469만달러를 제시했다.
포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포드 측은 재판 과정에서 “차량 지붕이 무너지기 전 이미 이 교수가 척추 손상을 입었다”고 반박했다.
미 법원은 지난해 12월 이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이 교수의 책임도 일부(35%) 인정해 포드사는 배상청구액의 65%인 278만달러(약 3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사고차량을 개조했던 퀴글리모터 측도 77만5000달러(약 8억원)를 이 교수한테 배상하도록 했다.
승소 사실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다. 이 교수 역시 전화통화에서 “소송 결과는 다 맞지만, 그 외 특별히 얘기하고 싶은 말은 없다”며 입을 닫았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등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사고 당시 차를 몰았던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함께 탔던 제자 이모(여·당시 24세)씨가 현장에서 숨졌다.
그는 3년 전 재활경험과 인생관을 담은 자서전 ‘0.1그램의 희망’을 출간해 희망이 주는 긍정적 에너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 책의 인세 전액은 숨진 제자의 이름으로 만든 장학기금에 꾸준히 기부되고 있다.
그는 사고 이후 피나는 재활훈련을 거쳐 1년 만에 전동휠체어와 음성인식 프로그램 등 보조공학기기를 활용해 다시 강단에 섰다. 강의와 연구는 물론 장애인들을 위한 강연·홍보 활동 등 사고 이전 보다 더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동휠체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초능력으로 움직이는 휠체어’라며 농담까지 건넬 정도다
한편, 제자 이씨 유족이 2008년 5월 사고차량 운전자인 이 교수와 포드, 사고차량을 제공한 캘리포니아공대 등을 상대로 현지 법원에 낸 1000만달러(약 100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2009년 7월 취하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관계자는 “당사자들 간에 원만한 합의로 소가 취하됐으며, 합의금액 등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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