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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새로운 스타 발레리나로 떠오르고 있는 강효정이 발레단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테크닉과 표현력을 모두 갖춘 발레리나로 평가받는다. 백소용 기자 |
역시 소름 돋을 정도로 감동했던 데트리히 무대감독은 이에 찬성했고, 휴식시간에 스태프를 모아 의견을 물었다. 이견이 없었다. 공연 후 커튼콜이 12번까지 이어지며 관객들의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앤더슨 예술감독은 이례적으로 무대 위로 올라가 “이제 저희도 집에 가고 여러분도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신예 커플의 수석무용수 승급이라는 깜짝 뉴스를 전했다.
세계 메이저 발레단에 또 한 명의 한국인 ‘슈퍼스타’가 탄생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솔리스트로 활동 중이던 강효정(26)은 이날 줄리엣 역할로 데뷔하는 동시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이로써 그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역대 최연소 동양인 수석무용수이자 솔리스트에서 최단기간(1년) 안에 승급한 수석무용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공연 후 연습실에서 만난 강효정은 “사람들이 내 공연을 보고 울었다는 말에 아직도 얼떨떨하다”며 “모든 것이 꿈 같다”고 말했다.
데트리히 무대감독은 “공연에 감동받은 연출진들이 2번째 휴식시간에 이미 성공적인 공연임을 확신하고 예정에 없던 ‘깜짝 승급’을 추진했다”며 “그녀는 이미 스타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스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효정과 로미오역을 맡은 동갑내기 무용수 알렉산더 존스(Alexander Jones)의 이날 호연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세대교체를 예고하고 있다. 지역신문 에슬링엔 차이퉁은 ‘매끄러운 세대교체’라는 제목의 리뷰 기사를 통해 독일의 다른 발레단이 신세대 주역 무용수를 찾아내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고 전제하며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게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에서 온 발레리나 강효정은 수줍은 소녀와 같으면서도 동시에 줄리엣의 뉘앙스를 잘 살려 연기했으며, 그녀의 연기는 모든 장면에서 적합하고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유명하게 한 존 크랭코 안무의 대표적 레퍼토리 중 하나다. 특히 줄리엣 역할은 발레리나가 주연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는 결정하는, 발레리나로서는 정점에 서는 첫 역할로 꼽힌다.
“전 그동안 주역 무용수의 여동생 역할을 주로 맡는 ‘여동생 전문’ 무용수였어요. 하하∼. 줄리엣을 저에게 맡긴 것은 이제 누군가의 여동생이 아닌, 진정한 주연으로 봐준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제 나이에 어울리는 발랄한 줄리엣 역할을 정말 해보고 싶었기에, 캐스팅이 결정됐을 때 날아갈 것 같았어요.”
이번 공연은 발목 부상이라는 슬럼프를 극복한 자리라서 더욱 빛났다. 그는 “지난해 6월 초 발목 바깥 인대가 늘어나서 몇 달 동안 쉬다가 9월에 다시 시작했다”며 “워낙 연습량이 많고 공연이 많아서 무용수가 다치는 일은 허다하지만, 순조롭게 회복한 이후 좋은 작품을 계속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2002년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 입상한 강효정은 2004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입단 후 7년 만에 주역 무용수가 됐다. 유럽 발레계에서 한국인으로서는 같은 발레단의 강수진과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 발탁된 김지영(현재 국립발레단)에 이어 세 번째다. 어느새 우러러보던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그는 여전히 꿈꾸는 소녀 같은 설렘을 나타냈다.
“나이 들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공연하는 게 쉬워질 줄 알았는데 점점 어려워지더군요.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무대에 서면 설레고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앞으로도 무대의 자유로운 느낌을 계속 즐기고 싶어요.”
강효정은 6월 한국을 찾아 서울 등에서 고국 팬들에게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슈투트가르트=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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