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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장편소설 ‘꽃 같은 시절’

입력 : 2011-04-15 21:39:58 수정 : 2011-04-15 21:3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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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 개발로 망가지는 ‘삶의 터’…사회 모순과 갈등 정면으로 돌파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쉽지도, 편치도 않다. 현실은 분명 모순에 차 있는데, 우리가,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고,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려워서다. 더구나 시대와 역사 경험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지면 더 막막해진다. 반대, 투쟁, 시위 같은 것들이 “말만 들어도 뻣뻣해지는 단어”(영화감독 임순례)가 돼버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소설이 있다. 한 시골마을에 들어선 쇄석공장에 대항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투쟁’을 담은 소설가 공선옥(48·사진)씨의 장편 ‘꽃 같은 시절’(창비)이 그것이다. 지난해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한 작품을 묶었다.

소설은 횟집을 하다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철수와 영희 부부가 살 집을 찾아 시골마을에 흘러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복사꽃 환한 빛에 반해 어느 빈집에 우연히 들어선 부부는 꽃집이 좋으면 그냥 살라는 인심 좋은 집주인의 허락으로 살 거처를 마련한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않는다. 인근에 불법 쇄석공장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순식간에 먼지와 소음으로 뒤덮이고 주민들은 항의에 나서지만 쉽게 무시당한다. 대부분 60, 70대 노인들인 주민들은 “문지(먼지) 땜에 못살겄단 말이요”(25쪽)라며 데모를 벌인다. 외지인 영희는 떼밀리다시피 시위 현장에서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 시골 할머니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점차 ‘투사’로 변해간다.

소설 ‘꽃 같은 시절’은 근래 보기 드물게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갈등, 대립의 한 지점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는 공 작가의 말처럼, “개발과 돈벌이 때문에 망가지는 삶의 현장”을 정면으로 다룬다.

시각은 소외된 사람들의 편. 순박한 할머니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과 눈물을 보듬는다. 거미를 죽여서 죄로 갈 것 같다는 할머니, 도시락 싸고 다니면서 자식들 데모 막던 할아버지가 지금 이대로 살고 싶다며 투쟁에 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소설은 이들의 작은 항거에서 시작해 이들의 소리에 무관심한 우리를 육박해온다. “세상이 난리인 것은, 작은 항거들 때문이 아니라 그 작은 항거들이 ‘조용히’ 무시되기 때문”(‘작가의 말’ 중)이다. 결국 할머니들의 싸움은 패배로 끝나는 듯하다. 하지만 소설은 이미 승리와 패배 어느 것도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패배주의에 맞서고 현실을 정면으로 보는 것이다.

“엄마도 싸우는 게 힘들어. 하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나는 건 우리를 더 힘들게 할거야…. 긍게, 내 속의 패배주의와 싸운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냐 하며는, 이기든 지든 결과에 상관없이 나를 억압하는 것과 싸운다는 것이여.”(146쪽)

공선옥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향토어가 소설 속에서 꽃을 피우고, 자연이 뚜벅뚜벅 걸어나와 말을 걸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계산된 플롯보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천연스럽다. 특히 저승 가는 길의 묘사는 황홀하다. 마치 활짝핀 봄꽃처럼.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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