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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판에서 관객과 다시 놀다’ 국립극단 ‘우리 단막극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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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4-01 16:29:29 수정 : 2011-04-01 16: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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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의 연극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경험이 미숙한 초보 작가나 연출가의 작품이 아니라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원로 작가들의 작품을 능력 있는 젊은 연출가들이 조리했다. 국립극단이 올리는 작품이라는 점, 연극 애호가들에겐 이미 익숙한 연출가 3인의 손을 거쳤다는 점 만으로도 평균 이상의 기대감을 가지게 했으리라. 기자와 비슷한 이유로 많은 관객들이 국립극단이 새로 마련한 열린 공간으로 찾아들었다.

한국연극사의 고전을 오늘의 감수성으로 재조명하는 자리인 국립극단의 우리단막극 연작 ‘새 판에서 다시 놀다’가 22일부터 30일까지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2011 국립극단 봄마당>축제의 막을 열었던 백성희, 장민호 주연의 [3월의 눈]에 이어 두번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소극장 판의 개관작에 선정 돼 60~ 70년대 쓰여진 희곡작가들의 작품을 젊은 연출가들의 시선을 투영해 그려냈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하다.

연극적 상상력과 영상 사이의 충돌 <파수꾼>

국립극단의 연작 단막극 ‘새 판에서 다시 놀다’ 중 첫번째로 공연됐던 '파수꾼'(이강백 작 / 윤한솔 연출)은 연출가의 고뇌가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고뇌하지 않는 연출가가 어디 있을까? 하겠지만 이번 작품은 고뇌가 상당량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억압적인 집단 권력의 허위성을 고발한 원작을 윤 연출가는 무대 뒤 영상을 적극 활용해 연극화했다. 극장과 바로 근접해 있는 서울 역 영상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이 근처 어딘 가에서 살아있는 파수꾼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을 체감하게 한 점, 인형으로 형상화해서 기계음만 반복적으로 내뱉는 파수꾼 가를 설정한 점, 진실을 은폐하는 기회주의적인 지식인을 떠올리게 하는 파수꾼 인형을 불에 태운 점 등 전반적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이 많았다.

촌장에게 설득당하는 젊은 파수꾼 다 역의 김지희, 존재하지도 않는 이리 떼를 이용해 내부 권력을 공고하게 다지는 촌장 역의 전국향등 각자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하지만 관객들의 마음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침묵하고 거짓을 말할 수 밖에 없는 파수꾼의 모습에 동시대성을 느끼고 뭔가 울림이 남아야 함에도 연출가가 과도하게 사용한 영상이 독으로 작용해 관객들의 주의가 흩어졌기 때문이다.

연극적 상상력을 펼쳐보기도 전에 영상이 삽입된 의도를 캐내야 한다는 부담감, 그럼에도 자꾸 반복되는 영상에 관객들은 다소 지쳐갔다. 일전에 윤 연출가가 올린 콘서라마 ‘누가 무하마드 알리의 관자놀이에 미사일 펀치를 꽂았는가?’가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관객들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분명 실험적인 작품에서 힘을 발하는 매력적인 연출가이지만, 연출가의 고뇌가 겉으로 드러나기 보다 안으로 삭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게 된다.

진짜 단막극이다. <흰둥이의 방문>

'흰둥이의 방문'(박조열 잘 / 김한내 연출)은 김 연출 특유의 깔끔함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러닝 타임 역시 30분 내외로 가장 짧았다. 이번 작품 역시 영상을 사용하고 있지만 적절한 수위에서 극 안에 개입하고 있었다. 김한내 연출은 관객의 시선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권력”과 “파워게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흰둥이의 방문’ 은 인간처럼 말하는 개 흰둥이의 방문 이후  ‘개새끼’라는 욕설의 의미가 돌고 돌아 결국 관객들의 머릿 속에 안착했다.

남편의 모습을 통해 공권력의 외투를 벗은 집 안에서는 개의 울음소리도 이해하는 소시민이지만 막상 공권력 안에서는 개새끼(시위대)를 잡기도 하고 자신이 개새끼가 되기도 하는 사실을 연극적으로 잘 표현해냈다. TV영상에만 빠져서 사회의 실상을 보려하지 않는 아내의 모습은 관객과의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무게감 있는 내용 전개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성에 차지 않았을지도 모르나 재치, 유머 삶의 페이소스가 압축적으로 담긴 단막극의 묘미를 느끼고자 한 관객들은 상당수 만족감을 표했다.

배우의 힘으로 승부한다. <전하>

전하'(신명순 작 / 김승철 연출)는 연극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김승철 연출가는 계유정란과 단종의 양위를 다룬 사극 공연을 앞둔 배우들의 리허설 상황으로 이야기를 각색해 앞 작품이 끝난 후 이어진 인터미션 시간에 관객들을 따로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무대 전환을 그대로 노출했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던 그 순간을 재현하는 배우들로 인해 극중극이 펼쳐진다. 이후 신숙주가 세조를 지지하고 친구들의 죽음을 통해 느끼는 인간적 고뇌가 무대에서 그려졌다. 그것도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연극과 실제를 오가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긴장과 이완의 끈을 절묘하게 움켜진 채 배우와 관객이 함께 사유의 시간을 공유했다는 사실에 관객들은 환호했다. 한국 최초의 서사극으로도 불러지기도 했던 ‘전하’는 역시 명작은 시대를 뛰어넘어 그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이 드는 공연이었다. 다만 극 마지막 관객들의 긴장감을 조이는 타악기 소리가 극의 정점을 찍어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2011 국립극단 봄마당>축제는 4월 2일부터 10일까지 ‘황혼의 시’ (이철 작/ 박해성 연출)로 이어진다. 그 후, ‘주인이 오셨다’ (고연옥 작/ 김광보 연출)를 4월 21일부터 5월 1일까지 공연한다. 많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던 연극 ‘3월의 눈’이 따뜻한 5월에 다시 돌아온다.

한편, 국립극단 ‘우리 단막극 연작’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연출가 윤한솔과 김한내는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작품을 마친 후 ‘나는 나르시시스트다’라는 주제로 혜화동 1번지 5기동인 봄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연출가 김한내는 <인터내셔널리스트>(5/4~15), 연출가 윤한솔은 <나는야 쎅쓰왕> (5/19~29)을 선보인다. 이 외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 김수희 연출가는 <더 위너>(4/20~5/1), 이양구 연출가는 <유년의 뜰>(6/3~12), 김제민 연출가는 <배신>(6/16~26)을 들고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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