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코미디인가? 이상하다. 명동예술극장에서 하니 정극이 분명 할 텐데. 조금만 더 감상해보자. 다시 봐도 코미디인 게 분명해. 그렇다면 신나게 웃다 가자! 그런데 대학로의 삐끼들의 권유로 본 코미디 연극과는 느낌이 분명 다르내 ”
얼떨결에 연극 [동 주앙]을 보러 들어온 한 관객의 말이다. 사전 정보를 알지 못한 채 관람하러 온 관객들 대부분은 뮤지컬 ‘돈 주앙’을 머릿 속에 떠올리며, 그 얼개 그대로 (노래가 빠진)연극이 재현될 거라 짐작했던 모양이다. 즉, 희극작가로 유명한 몰리에르가 원작을 썼음을 간과한 채 명동예술극장이라는 극장의 특성만 염두해 둔 채 극을 감상한 것이다.

기대하지 못한 희극이 더 유쾌한 법. 최용훈 연출의 손을 거친 [동 주앙]이 희극라는 것을 모른 체 감상하던 관객들은 자지러지며 웃어댔다. 무대 위 여자들 뿐 아니라 객석의 여자들까지 제 편으로 만들겠다고 달려드는 바람기를 내 보이다 어느 순간 모든 권력과 종교, 규범에 반항하는 동 주앙, 입 바른 소리를 골라 하지만 더 악독한 위선자 스가나렐의 모습에 관객들은 그들을 마음속으로 조롱하고 공개적으로 웃음을 날려줬다. 즉 희극의 정수를 제대로 맞봤다.
주인공 '동 주앙'(김도현 이율)에만 관심을 갖고 극장에 들어섰던 관객들은 또 다른 주인공 스가나렐(정규수)과 조연들의 연기에 눈을 떼지 못했다. 즉, 번지르한 외모로 무장한 채 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이 줄줄 나오듯 거침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동 주앙의 언변에 한 차례 매료되고, 정감가게 생긴 얼굴로 굽신거리면서 관객들의 귀를 낚아채는 훈계조의 말을 중얼거리는 듯 흘리는 스가나렐의 솜씨에 두 차례 빠져든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막이 내릴 즘 동 주앙 보다 더 악독한 놈이 스가나렐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묵직한 웃음을 터트렸다.

'귀족의 고결함'을 깨알같은 웃음으로 선사한 동 카를로스 역 성노진과 동 알롱즈 역 최지훈, 울림있는 목소리로 모든 것을 제압한 엘비르역 박미현 뿐 아니라 속절없이 동 주앙에 빠져드는 시골처녀 샤를로트를 연기해낸 김동화의 연기 역시 극의 완성도에 힘을 실어줬다. 동 주앙의 아버지 동 루이를 열연한 권성덕은 길지 않은 장면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후반 깜찍한 의상을 입고 등장해 관객들의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와 최용훈 연출가, 그리고 배우 김도현이 만들어낸 동 주앙 이란 인물은 어떠한 캐릭터인가? 동 주앙에게 '사느냐 죽느냐'라는 고민은 무의미하다. '사랑' 자체에 빠지기 보다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있는 자유'에 빠져들고 신을 조롱하는 동 주앙의 사전에 '반성'과 '구원'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의 이중성과 속물성을 거침없이 폭로하며 오히려 자신은 보다 인간적임을 역설하기도 한다.

최용훈 연출가는 퇴장하는 배우들의 비명 소리를 연출기법에 도입했다. 극단 수레무대가 올린 몰리에르의 희극 [스카펭의 간계]에서 등퇴장시 시소를 이용해 극의 리듬을 살려낸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 무대에서 사라진 뒤에 들려오는 배우들의 비명소리는 각 상황과 일치되며 깊은 잔상을 남기며 극에 리듬을 불어넣었다.
또한 하성옥 무대 디자이너는 무대 속 무대를 보는 듯한 이중의 액자무대를 선사했다. 즉 작은 모니터가 무대 안에 있어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투영할 뿐 아니라 동주앙이 끝내 석상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세상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짐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연극은 끝까지 희극적인 울림을 만들어냈다. 동 주앙이 지옥으로 떨어지자 하인 뿐 아니라 아버지까지 기쁨의 제스처를 선보인다. 단, 위선자인 하인 스가나렐은 월급을 받지 못함에 안타까워한다. 이에 관객은 마음 속에서 떨쳐버리지 못하는 '위선의 그림자'에 가슴이 묵직해져온다.

이번 연극으로 몰리에르의 작품 세계에 매료됐다면, 3월 28일부터 4월 10일까지 올려지는 [2011 아시아 연출가전]을 주목해보길. "봉쥬르 몰리에르"라는 주제로 한국연극연출가협회와 대학로 공연예술센터의 공동주최로 진행되는 [2011 아시아 연출가전]은 한국, 인도, 일본 세 연출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공연인 김태용 연출의 <스카펭의 간계>, 인도공연 <따르뛰프>, 일본공연 <돈 주앙>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히로타 준이치 연출이 만들어내는 <돈 주앙>은 우리와 어떻게 또 다른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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