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자도 중에는 앞에서 살펴본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이외에도 조선시대 유교 사상을 배경으로 제작된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가 있는데,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도덕 강령으로 지녀야 할 효(孝 : 효도), 제(悌 : 우애), 충(忠 : 충성), 신(信 : 믿음), 예(禮 : 예절), 의(義 : 의리), 염(廉 : 청렴), 치(恥 : 부끄러움)의 여덟 글자를 각 글자와 관련된 고사에 등장하는 사물과 함께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그린 교화용 그림으로 대게 여덟 폭의 병풍으로 제작되어 생활공간을 장식하였다.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는 각 지방마다 독특한 특징을 갖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는데 그 예를 들면 강원문자도와 안동문자도 그리고 제주도 문자도가 이에 해당된다. 강원도 문자도는 조선시대 말기에서 일제 때까지 강원도에서 살았던 황(黃)노인으로 불리던 석강(石岡) 황성규(黃聖奎)에 의하여 창안된 문자도로 기존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에 산수도나 화조도 또는 책거리도 등을 상하로 결합하여 함께 그린 그림이다. 또 제주도 문자도의 경우 대게가 효제문자도를 중앙에 배치하고 상, 하에 꽃문양이나 물고기 등을 배치하는 3단 구성의 그림으로서 곳곳에 물결 문양인 수파문(水波紋)을 그려 넣은 독특한 문자도이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어려서부터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등의 병풍 앞에서 학업에 열중하기도 하고 때로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문자도에 표현된 도상과 관련된 고사를 통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도덕 강령을 배웠다. 예를 들면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중 효(孝)자에는 죽순이 그려지는데 이는 중국 오(吳)나라 때의 선비 맹종에 관련된 이야기를 내포한다. 맹종은 연로하신 모친을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어머니가 병이 걸려 고생하던 중 죽순을 먹어야만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나무 밭으로 달려가 죽순을 찾았지만 때마침 겨울인지라 죽순을 찾을 수 없어 온종일 그 자리에 앉아 울었다. 그때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눈이 녹으면서 죽순이 솟아나 그걸 베어다 어머니를 봉양하자 병이 나았다는 맹종읍죽(孟宗泣竹)의 이야기가 효(孝)자에 죽순으로 표현된 것이다.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중에는 위에서 말한 여덟 글자 이외에도 간혹 사당이 함께 그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효제문자도가 처음에는 공부하는 학동 방이나 선비의 방을 장식했던 교화용으로 사용되다가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러 제사를 모실 때 사용한 제례병풍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조선민화박물관 관장 오석환 http://www.mi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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