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면에 담긴 인간 군상의 모순 풍자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평양성’은 신라·당나라 연합군과 고구려 간 전투를 코믹하게 다룬 영화로, 2003년 나당연합군과 백제 간 전쟁을 다룬 ‘황산벌’의 후속작이다. 백제가 망하고 8년 후인 서기 668년. 당나라는 신라군을 선봉 삼아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공격하지만 연개소문의 둘째 아들 남건(류승룡)이 이끄는 고구려군의 기세에 눌려 패전을 거듭한다.
하지만 연개소문의 장자 남생(윤제문)과 실권자 남건 형제가 대립하면서 고구려는 내홍에 휩싸이고 권력싸움에서 밀린 남생이 당에 귀순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고구려군 비밀을 아는 남생의 도움으로 당이 고구려 전력의 핵심인 기마부대를 전멸시킨 것이다.
당은 최후의 공격을 준비하고 고구려의 몰락을 예감한 신라군 사령관 김유신(정진영)은 “연개소문이 죽는 순간 고구려는 끝난기고, 이제부터는 신라와 당나라의 전쟁이 시작된기야”라며 곧 다가올 당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한편, 전투장에서는 꽁무니를 빼곤 하는 백제 출신 신라병 거시기(이문식)는 고구려 포로가 되지만 달변 덕택에 오히려 고구려의 미녀전사 갑순(선우선)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행운을 누린다.
영화 ‘평양성’의 큰 구도는 나당연합군과 고구려 간 전쟁으로 잡히지만, 좀더 세밀하게 들어가보면 확 달라진다. 즉 신라와 당나라는 연합군이지만 뒤로는 전쟁 이후를 생각하며 서로 상대 전력을 소모시키려 갈등하고, 고구려 남생·남건 형제도 명분(전쟁)이냐 실리(항복)냐를 두고 고민한다. 또 전쟁 승패와 상관 없이 오직 살아남고자 하는 거시기와 출세를 지향하는 문디 등 전쟁의 이면에 담긴 인간 및 집단의 군상이 꿈틀거린다.
이 과정에서 풍에 걸린 김유신, 단순무식 전쟁광 남건 등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을 적절하게 비틀고 민초들의 삶을 적절하게 풍자함으로써 ‘이준익표’ 해학과 풍자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특히 전투 장면이나 규모는 이전 ‘황산벌’에 비해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투석기를 이용한 당의 공격이나 수백개 화살을 한 번에 쏘아 보낼 수 있는 고구려 신무기는 눈길을 사로잡을 만하다. 순 제작비만 6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다만 거시기 역의 이문식과 김유신 역의 정진영이 전편에 이어 다시 등장하고, 나당연합군과 삼국의 한 나라가 싸운다는 설정도 비슷하며, 전쟁이란 민생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싸움이라는 주제의식도 비슷하다는 점은 다소 부담이 될 수 있어 보인다. 2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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