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미의식은 어떤 모습일까. 다소 추상적일 수 있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을 안다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눈을 갖는 일이기도 하다. 영국의 예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타고난 경향이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의식이 단순히 양식적 스타일을 넘어 문화의 정체성까지도 대변하는 이유다. 31일까지 인터알리아 신년기획으로 선보이는 ‘美의 미학-선과 색’전은 한국적 미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에는 4명의 회화작가와 4명의 도예작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적인 미의식(예를 들면 화려함과 단아함, 웅장함과 단출함, 섬세한 장식과 무기교의 단순함 등)의 조화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도자기는 우리로 하여금 화려한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는 고졸한 미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도자기는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미의식을 대변하는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강민수와 전성근 작가는 백자를, 이동하 작가는 청자를 통해 그런 특유의 미감을 전승적 차원이 아닌 창의적 계승의 차원에서 잘 살려내고 있는 도예가들이다.
한국적인 미학의 한 축이 절제된 단아함이라면, 다른 한 부분은 고려 불화, 민화, 단청, 한복의 화려한 복색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화려함과 섬세함의 어우러짐이 돋보이는 선과 색채라고 할 수 있다. 여경란, 정종미, 홍지연 등의 작가는 각각의 도조와 회화 작업 안에서 그런 선과 색채의 조화를 보여준다.
의도적으로 전통적인 미의 요소를 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지역적 특징과 문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 속에 녹아들기 마련이다. 김홍주와 하상림 작가는 한국적 자연관 내지 우주관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강민수는 오로지 백자달항아리만을 빚는 달항아리 작가다. 15년 이상 달항아리만을 빚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는 전통적인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그만의 고유한 미감으로 되살려내고자 한다. 그것은 곧 ‘무기교의 기교’라는 경지로 ‘고졸한 미’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기교를 닦고 완벽하게 드러내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을 극복하여 절제의 미덕에 닿기는 한층 더 어렵다는 차원에서 그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장작가마를 고집한다.
전성근은 백자 투각 작가다. 애초에 목조각 작가답게 세련된 섬세함이 묻어난다. 일반적으로 백자가 은은하고도 차분한 색채와 단순하고도 포용적인 선이 만나 고졸한 맛을 끌어낸다면, 그는 그런 색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날렵하고도 유려한 선을 잘 조화시켜 백자를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이동하는 청자를 빚는다. 작가는 청자 중에서도 합과 향로에 주목하면서 그 비취빛 색과 섬세한 선(절제와 세밀함을 동시에 품은 청자의 선과 색은 전통 미술 전반에 걸쳐 있으며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분명 구분되는 한국의 특징적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을 동시대적인 미감으로 이끌어 낸다.
홍지연은 회화의 문맥 안에서 민화적 색채와 도상들을 화면 안으로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민화의 화려한 색을 장수, 건강, 다산, 재물 등과 같은 전통적으로 대중들의 소박한 기원을 담아온 서민의 색이면서, 현재에 일상화된 색으로 파악한다. 그런 인식에 근거해 별도의 색을 만드는 조색(調色)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물감 그대로의 색을 쓴다. 다만 색을 결정함에 있어 간판, 광고 전단, 패션 잡지 등과 같은 일반적 매체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색을 선택한다.
여경란은 공예적 특성에서 벗어나 보다 조형적인 차원에서 도예에 접근한다. 민화의 화려하면서도 정제된 색채와 선을 수용하고, 나아가 민화가 담고 있는 서민적 기복의 의미를 새롭게 담아낸다.
정종미는 전통 한지, 염료, 보자기 등에 주목한다. 무엇보다 그가 한지에서 발견한 것은 한국의 여성성 혹은 모성이다. 한지의 특성에서 한국적인 여인의 기질을 발견한 것이다. 그 기질이란 아마도 한국 여인의 여린 듯 강인한 성품이며, 작가의 종이부인 시리즈와 같이 가녀린 선과 화려한 색채의 조화로서 시각적으로 가시화된다.
김홍주는 세밀한 선과 깊고도 은은한 색채의 조화로 이른바 자연에 근거한 우주적 사유를 담아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주로 논, 산, 지도, 문자, 잎, 꽃 등을 주요 소재로 작업하고 있다. 추상에서 극사실로 그리고 80년대를 전후한 세밀한 풍경 시리즈에 이르러서는 대상성을 넘어서고 있다. 그의 작업이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성을 강하게 품는 이유다.
하상림은 가늘면서도 역동적인 선과 두드러지지는 않으면서도 다채로운 색채의 조화를 꾀한다. 풀을 그리면서도 일관된 관심사는 선과 색의 조화다. 하지만 화면은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02)3479-0164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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