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깨달은 것이 있다. 노인 건강은 예측불허라는 점이다. 날씨만 추워져도 건강하던 분조차 홀연 세상을 뜬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당하고 보니 새삼 실감이 간다. 84세에 입원생활 없이 돌아가셔서 그런가, 모두 호상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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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군산여상교사 |
발인 후 손아래 처남들과 동서랑 만나 조문내용을 살펴보았다. 애경사야 품앗이라 어느 가정에서나 그렇듯 그 내역을 가려 다음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직장 동료 대부분이 조문을 왔다.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온 건 열 명 남짓이었지만 소정의 부의금은 전달해 온 것이다.
그런데 7∼8명이 빠져 있다. 일부러 안 했는지, 깜박 잊고 못 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같은 직장 안에서 서먹서먹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물론 딱히 서운해하거나 괘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초상이나 혼사 등 애경사가 품앗이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니까.
애경사는 분명 품앗이인데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어 당황스럽다. 조문과 함께 조위금을 ‘받아 먹고도’ 어쩐 일인지 꿩 구워 먹은 자도 여럿이니 말이다. 전화번호가 바뀌어 연락두절도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것보다 아쉬운 것은 정작 다른 데 있다. 4남매가 두 번이나 돌려가며 확인해 봐도 누가 냈는지 알 수 없는 봉투가 여러 개였다는 사실이다. 하긴 모친상에서 누구인지 몰랐던 2명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내 정체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무슨 익명의 연말 불우이웃돕기가 아닐진대 혹 그 사이 결례나 하지 않았는지 걱정된다.
장인의 살아 생전 말씀대로 감사의 인사장을 우편으로 전하려고 보니 직장이나 주소가 없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감사의 인사장이 없어지는 추세라곤 하나 그렇지 않다. 특히 고인께서 특별히 ‘하명’한 일인데, 우편물 보낼 주소가 없다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차제에 권하고 싶다. 기왕 하는 조문이라면 이름과 직장은 꼭 적도록 하자. 퇴직한 분이거나 백수라 해도 집주소만큼은 적어 상주들의 고마운 마음이 초상을 치른 후 꼭 전달되도록 했으면 한다. 누구든 언제든지 겪을 일이기에 그렇다.
또 하나는 액수를 봉투 안 윗부분에 표기했으면 한다. 4만원의 조위금으로 다소 낯선 액수가 몇 명 있어서 하는 말이다. 다행히 그중 일부는 확인할 기회가 있어 5만원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추후 품앗이할 때 같은 액수를 넣어 실수하면 안 되겠기에 애써 하는 말이다. 조문에도 나름의 법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세진 군산여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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