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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배수아의 몽골 에세이] <6> 미인대회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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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2-09 17:09:07 수정 : 2010-12-09 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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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리아는 알 수 없는 호기심과 기대로
뭉게구름처럼 마음 한껏 부풀어
나중에 알고 보니 재미삼아 건넨 농담
축제의 첫날 저녁, 유르테에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갈잔은 의외의 말을 했다. “나는 추장이지만 여러분에게 뭔가를 명령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하겠다. 오늘은 활쏘기대회가 있었고, 내일은 몽골 전통 씨름대회와 승마대회가 열리고 다른 행사도 펼쳐질 예정이다. 루드비히와 게르하르트, 그리고 파울은 씨름대회에 참여하도록 하라. 그리고 마리아와 수아, 릴로는 미인대회에 참여하도록 하라. 마리아는 자연스러움이라는 장점이 있고 수아는 동양적인 수줍음이라는 장점이 있으니 충분히 나갈 만하다. 게다가 릴로는 전형적인 금발 미인이니까.”

◇축제를 위해 성장을 한 투바인들. 품위 있는 델에 허리띠가 인상적이다. 몽골의 전통의상인 델에서 허리띠는 주머니칼 등의 도구를 달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때 마리아는 예외적으로 나와 한 자리 건너서 앉아 있었으므로 나는 그녀의 반응을 즉각 관찰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곁에 앉은 스위스인 릴로는 냉소적인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남자들은 참 이상하군. 여자들도 항상 자기들처럼 경쟁에 목을 매는 줄 안다니까. 우리는 남자들처럼 무슨 무슨 대회에 나가 서로 겨루기를 원하지는 않는데 말이지. 그러나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 모두 다 추장의 명령을 거부하고 안 나가면 그만인 거야.”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나는 마리아를 구석으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릴로는 우리 모두 거부하자고 하던데. 나는 아무런 대꾸도 못했어. 내가 갈잔의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 자신이 없기도 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으나 마리아는,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나가야지,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게 얼마나 큰 추억거리가 되겠니. 나 지금 너무 기쁘단다. 델을 입고 나가면 될 거야.” 나는 갈잔이 기분에 겨워 즉흥적으로 뱉은 말이 아닌가 계속 의심했지만 마리아는 절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돼. 투바인의 미인대회에 투바인도 아닌 우리가 나가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외국인인 우리가 상을 받는다는 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씨름대회야 객관적인 승패가 분명한 거니까 예외라고 해도 말이야.” 그러나 마리아는 이 사태를 논리적으로 따져볼 마음이 애초부터 없는 듯이 보였다. “난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를 감아야겠어.” 마리아는 황홀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린 화장을 해야 할지도 몰라. 수아, 네 화장품 날 빌려줄 수 있지?”

◇투바의 씨름대회에 출전한 루드비히. 신체급수가 없는 이 시합에서 놀랍게도 루드비히가 패했다.
나는 그만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마리아에게 이런 면이 있었단 말인가. 내가 선크림을 하루에 두 번 바르거나 머리를 사흘에 한 번만 감아도 외모에 집착한다는 둥, 겉모습 치장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둥, 그럴 거면 뭐 하러 이 알타이까지 왔느냐고 하며 엄격하고 비판적인 눈길을 보내던 마리아가 아닌가.

그러나 나 또한 어느새 알 수 없는 호기심과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한국에서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면 내 반응 또한 릴로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기묘한 기분이었다. 나도 일찍 일어나 머리를 감고 화장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여기, 알타이 미인대회에 나가보고 싶다는 기대로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마구 부풀고 있었다.

대화를 계속할수록 마리아의 기분은 나에게까지 전염되어, 우리는 마침내 투바 미인대회에 나가는 후보가 우리뿐이며, 우리 둘 중의 한 명이 상을 받는 것이 당연지사인 듯이 느끼게 되었다. 서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얘가 더 예쁠까 내가 더 예쁠까 궁리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축제 이틀째 날이 밝았지만 우리 일행들은 이상하게 아무도 미인대회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모두 갈잔이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갈잔이 경솔하게도, 대다수가 여성들인 우리 일행을 대상으로 그런 안티페미니즘적인 농담을 했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말 없는 가운데 팽배해 있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마리아와 나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으며, 릴로는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마리아와 내가 유르테 한구석에서 머리를 맞대고 미인대회에 나갈 꿈에 부풀어 키득거리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얼마나 한심한 인상을 줄 것인가.

마리아와 나는 화장은커녕 머리도 감지 못하고 축제 장소로 갔다. 나는 정말로 미인대회에 나갈지 어떨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리고 다른 일행들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상황 자체가 점점 즐거워지고 있었다. 알타이산맥에서 미인대회가 열린다는 것과, 거기에 어쩌면 마리아와 함께 참여할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추장의 특별 명령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할 일이라고는 야크 똥 모으기밖에 없는 알타이의 일상에서 그것은 매우 드라마틱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알타이 스텝 평원에 흩어진 사람 얼굴을 한 석인상들. 고대의 주술제사 유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가 축제 장소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한 사람들이 큰 원을 그리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었으며, 한쪽에는 벌써부터 남달리 곱게 차려입은 한 무리의 여인들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공연을 위해서 차려입은 무희나 음악인들인지, 아니면 미인대회에 나가려고 준비해온 여인들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그건 마리아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미인대회에 참여하려면 등록을 해야 할 텐데.” 마리아가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어쩌면 좋지.” 그래서 우리는 겸연쩍음을 무릅쓰고 바체체를 불러서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들의 통역 일을 해주는 스무 살의 생기발랄한 투바 처녀 바체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건 갈잔이 농담으로 한 말이야, 너희는 그걸 정말로 믿었단 말이니?” 하고 깔깔 웃는 게 아닌가.

나는 이쯤에서 제발 그만두고 싶었지만 마리아는 결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바체체에게, 갈잔에게 가서 한 번만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갈잔이 전날 저녁에 그 말을 할 때의 태도는 정말로 진지하기는 했다.

갈잔은 이미 축제 마당 정면에 놓인 탁자 앞 심사위원석에, 이 지역의 유지이자 정치가인 듯한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중이었다. 그런 자리에 가서 우리의 미인대회 참가 여부에 대해서 묻는다는 건 갈잔을 어려워하는 바체체에게 결코 쉬운 게 아니었겠지만,

그럼에도 바체체는 용기를 내서 갈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와서 조용하게, 갈잔이 어젯밤에는 그냥 재미 삼아 말을 한 것이므로, 미안하다고 하더라, 라는 뜻의 말을 전했다.

바체체는 유창하고 능숙한 독일어를 구사했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므로 사려 깊은 표현을 즐겨 사용하거나 예의를 차려서 돌려서 말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녀가 전해준 갈잔의 대답이란 것이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생뚱맞게 들렸지만―아니 그러면 우리에게 ‘명령’이란 어휘까지 써 가며 장난을 쳤단 말인가, 그러면 지금 열리는 씨름대회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 파울과 루드비히, 게르하르트의 경우는 뭐란 말인가―아마도 그건 바체체가 갈잔의 말을 요점을 추려 요약해서 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이 허탈해졌고, 비록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마리아의 실망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우리는 지난밤에 아무도 없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미인대회에 관해서 남몰래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우고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마치 우리는, 우리가 알타이-투바 미인대회의 1등과 2등 유력 후보자인 것처럼, 그렇게 느끼지 않았던가. 저마다 상을 타는 꿈에 부풀었다가, 겸손을 떨며 상대편에게 상을 양보하기도 하다가 하면서 말이다. 마리아와 나는 별말 없이 서로 마주보았다.

알타이에서 지내는 내내 마리아의 짙은 갈색 곱슬머리에는 비듬이 보였고 피부는 대개 아무렇게나 문질러 바른 선크림으로 허옇게 얼룩덜룩했다. 그리고 거울로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분명 내 모양새도 마찬가지로 그리 아리땁거나 단정하지는 않았음이 당연한데, 머리카락은 이마에 찰싹 달라붙은 채 힘없이 축 늘어져 있고 얼굴을 햇빛에 까맣게 타서 초라하게 반들거릴 것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손톱은 이미 오래전부터 야크 똥 때가 끼어서 까매져 있었고 손등은 거칠거칠해진지 오래였다.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여성들은 특별히 예쁘게 만든 전통의상을 입고 축제 마당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들 가운데를 사뿐사뿐 걸어 한 바퀴를 돌았는데, 그것이 미인대회의 유일한 행사 내용이자 주요 퍼레이드였다. 그중에는 우리에게 델이나 허리띠 등을 만들어주는, 가까운 유르테에 사는 재단사인 토야도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여성스럽고 우아한 축제의상과 비교하니 마리아와 내가 걸친 두터운 평상복 델은 마치 여자 빨치산 복장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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